냉동피자, 그 불편한 진실 ‘피자는 어떻게 세계를 정복했는가’
입력 2011-04-21 17:43
피자는 어떻게 세계를 정복했는가/파울 트롬머/더난출판
오스트리아 빈에 있는 유력 신문사 ‘쿠리어’의 경제 전문기자 파울 트롬머(31)는 어느 날 저녁 냉동 피자를 데워 먹다가 문득 밀가루 토마토, 살라미, 치즈, 소금, 기름, 마늘, 변성전분 등 포장지에 적힌 14가지 첨가물 목록을 보고 의문을 품는다.
‘이 첨가물들은 모두 어디에서 왔을까? 냉동피자는 어떻게 만들어지는 걸까? 도대체 누가 무엇으로 어떻게 이걸 만들었지?’
이어지는 궁금증을 풀기 위해 그는 가공식품을 만들 때 사용되는 음식 재료와 첨가물의 생산 및 유통과정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긴 여정 끝에 그는 자신을 포함한 대다수 소비자들이 값싸고 맛있는 가공식품을 찾으면서도 식품 생산 공정에 숨어 있는 진짜 무서운 문제를 간과하고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는 또 식품을 둘러싼 많은 문제들이 날씨나 토양 때문이 아닌 잘못된 정부 정책이나 탐욕스러운 기업 활동으로 야기된 것들이며, 소비자들 또한 싼 제품만 찾아다니면서 이런 현상을 더욱 부추긴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피자는 어떻게 세계를 정복했는가’는 파울 트롬머가 가공식품을 둘러싸고 전 세계적으로 일어나는 불편한 진실들을 하루 빨리 알려야 한다는 생각에서 펴낸 책이다.
최근 국내에서 출간된 이 책에는 파울 트롬머가 냉동 피자로 대표되는 글로벌 가공 식품산업이 경제와 환경, 건강을 어떻게 해치는지 알아내는 과정이 생생히 담겨 있다. 저자는 마치 친구와 대화하듯 이야기를 풀어가되 치밀하고 꼼꼼하게 식품산업 전반의 감춰진 실상에 서서히 접근해간다.
진실을 파헤치려는 그의 노력은 발품으로 이어졌다. 그는 독일과 미국, 이탈리아 등 세계 각지를 돌며 40여곳에 이르는 관련 단체와 피자 공장, 방앗간, 육류 가공업체 등을 찾아 다녔다. 또 미국에서는 거대 곡물 거래업체 CEO를, 이탈리아에서는 아프리카 출신의 토마토 수확 노동자를, 독일에서는 파업중인 우유 생산 농민 등을 만나 실상을 보고 들었다.
책은 밀가루 반죽과 토마토 소스, 육류, 치즈, 양념 등의 제조 과정에 얽힌 각종 부조리를 차례차례 들춰내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말미에는 이대로 가공식품 산업이 지속되다간 2050년에 인류 생존을 위협하는 식량위기가 닥칠 것을 경고하는 내용이 담겼다. 저자는 특히 식품을 생산하고 유통시키는 사람들뿐 아니라 유전자기술과 화학기술, 정부 보조금, 무역장벽, 매스미디어 광고, 할인 유통업체들의 과도한 경쟁 등 냉동 피자가 우리 식탁에 오르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샅샅이 훑어가며 가공식품의 위험성을 입체적으로 묘사한다.
“토스트피자나 피자치즈 등과 같은 냉동제품 중에는 속임수 제품들을 발견할 수 있다. 불과 몇 분 만에 생산되는 저렴한 생산 공정 덕분에, 식물성 지방과 단백질 분말로 이루어진 믹스제품은 진짜 숙성 치즈의 반값이면 구입할 수 있다. 식물성 지방을 얻는 과정에서 열대림이 사라지는 일도 적지 않다. 독일에서는 연간 10만톤에 이르는 가짜 치즈가 생산되고 있다.”(183∼184쪽)
저자는 글로벌 식품산업이 활성화될수록 심화되는 양극화 현상이나 비상식적인 일들도 도마 위에 올린다. 3억명에 이르는 비만인구와 10억명의 기아인구, 일당 1달러도 안되는 노동, 광우병과 구제역, 각종 성인병 등 글로벌 식품산업과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문제들이 끊임없이 제기된다. 저자는 화학첨가물의 위험성을 알리기 위해 간단한 실험을 해보기도 한다.
“2010년 1월 6일 한 맥도날드 체인점에서 치즈버거 하나를 사와 집에 보관해두었다. 몇 달이 흘렀지만 이 치즈버거는 썩지도, 곰팡이가 생기지도 않았다. 오이가 약간 수축됐을 뿐이다. 치즈버거를 구입하고 거의 5개월이 지났지만 치즈버거는 처음 구입한 날과 거의 똑같은 모습을 유지했다.”(46∼47쪽)
그렇다고 책이 식품산업의 부정적인 측면만 부각하는 것은 아니다. 거대기업과 경쟁하는 유기농 사업이나 전 지구적 미각의 동질화를 지양하는 슬로푸드, 공정무역 등 더 나은 세상을 만들기 위한 다양한 노력도 상세히 조명한다. ‘통큰’이나 ‘착한’ ‘위대한’ 이라는 수사를 곁들이며 유통질서를 왜곡하는 거대 유통기업에 맞서 사회적 기업으로 거듭나려는 사례들도 제시된다.
저자는 소비자들이 정체불명의 ‘화학폭탄’을 버무려 만든 가공식품의 그늘에서 벗어날 수 있는 10가지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한다.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 육류 섭취를 줄이고, 유기농·제철·현지 식품을 구입하고, 요리하는 법을 배워라 등이다. 너무 뻔한 방법들인가? 그러나 값싸고 맛있지만 나쁜 음식에 길들여진 현대인들이 실행에 옮기기란 쉽지 않은 것들이다. 그만큼 우리 식생활이 상식을 벗어나 있다는 증거다. 동시통역사 및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인 김세나씨가 우리말로 옮겼다.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