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마트워크가 원격근무? 자율근무!… 박용후 카카오톡 홍보이사 ‘1인 17역’ 하는 법
입력 2011-04-21 09:39
이 사람을 뭐라고 소개해야 할까.
일단 국내 스마트폰 가입자 1000만명 중 900만이 쓴다는 모바일 메신저 ‘카카오톡’의 홍보이사다. NHN재팬 전 대표가 세운 온라인 일본어교육 업체 ‘코코네’의 홍보이사도 맡고 있다. 프랜차이즈 회사 ‘제네시스BBQ’와 CS(고객만족) 컨설팅 회사 ‘예라고’의 마케팅 고문이고, 경남제약 이사다. 증강현실 비즈니스 ‘제니텀’의 마케팅 고문, 소셜 기부를 진행하는 ‘굿윌팔로워스’ 자문위원 등 공식 직함만 17개.
한 사람이 이 많은 일을 다 할 수 있을까?
가능하단다. 그에겐 스마트폰이 있고, 언제 어디서나 일할 수 있는 환경도 갖춰졌기 때문이라고 했다.
강원도에 때 아닌 폭설이 쏟아진 18일 낮 12시. 서울 반포동 영풍문고에서 카카오톡 박용후 이사를 만났다. 청바지에 흰 운동화, 검정 점퍼 차림. 예라고 마케팅 회의를 끝내고 여의도에서 막 오는 길이었다. 그 회의 전엔 뭘 했냐고 물으니 한참을 얘기한다.
오전 7시40분쯤 일어나 아이폰으로 일정 체크하고 메일을 확인했다. ‘카카오아지트’(카카오톡의 그룹 커뮤니케이션 앱)에 올라온 글 보면서 결재가 필요한 사항에 답변을 달았다. 서초동 집에서 여의도로, 다시 반포동으로 이동하는 택시 안에서 거래처와의 계약 등 서너 가지 업무를 처리했다.
이렇게 바쁜 사람이 서점은 주로 평일 이맘때 찾는다고 했다. 주말이나 퇴근 시간 이후엔 사람이 많아 찬찬히 둘러보기 어려워서다. ‘생각하지 않는 사람들’ ‘일터전쟁’ ‘회복탄력성’ 등 3권을 사고, 같은 책을 내게도 선물했다. 주말엔 ‘좀 쉬자’는 생각에서 주로 책 읽으며 보낸다, 그래서 인터넷서점 ‘예스24’ 포인트만 100만원 넘게 쌓여있다, 이런 얘기를 하는 목소리에 은근히 자랑이 배어 있다.
근처 식당으로 자리를 옮겼을 때, 궁금한 것은 뒤로 맨 그의 가방에 뭐가 들어 있나, 하는 거였다. 양해를 구하고 들여다보니 아이패드와 맥북에어, 충전기, 그리고 언제든 프레젠테이션을 할 수 있도록 노트북과 프로젝터를 연결하는 선이 있었다. 인터넷 연결이 안 될 경우를 대비해 에그(이동식 와이파이)도 항상 갖고 다닌다. 이 가방이 그의 사무실이다.
식사하는 내내 3∼4분마다 문자가 오고 전화벨이 울렸다. “지금 이게 다 일하는 거예요.” 아무렇지 않게 말하는데… 어쩐지 ‘언제 어디서나 일하기’가 좋아 보이지만은 않았다. 나랑 얘기 중인데, 이거 좀 불성실한 거 아닌가? 물어보니 나름의 원칙과 노하우가 있다고 한다.
“누군가 만나고 있을 때 전화나 문자가 오면 일일이 답하지 않고 내버려둬요. 정말 촌각 다툴 일은 거의 없거든요. 중요하다 싶으면 양해 구하고 통화하지만 그래서 상대방이 불쾌해하거나 제가 방해받는다는 느낌은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권 기자는 나 이러는 거 취재하러 온 것 아니에요?”
맞다. 그러고 보니 이날 동행취재를 위해 날짜와 장소를 정하고, 사전취재차 이것저것 묻고 답할 때도 우리는 카카오톡을 이용했다. 200자 원고지 4∼5장 분량의 답변도 이 사람은 카카오톡으로 척척 보내온다. 지난 11일 카카오톡 1000만 가입자 돌파 기념 간담회를 할 때도 그는 기자 140여명에게 카카오톡으로 그 사실을 알렸다. 아이폰의 그 작은 ‘키보드’로 1분당 200타를 쓴다니 말 다했다.
코코네 마케팅 회의가 있다고 해서 역삼동으로 갔다. 회의 주제는 ‘웹 중심 서비스를 모바일로 전환하기 위한 홍보 전략’. 다음 목적지는 신촌이다. 매주 월요일과 화요일, 연세대 언론홍보대학원에서 수업을 듣는다. 17개 직함에 하나 더 추가해야겠다. 그는 ‘학생’이기도 하다. 이동하는 택시 안에서 문자와 통화는 계속됐다. 수업은 밤 10시10분쯤 끝났고, 피곤하지 않냐고 물었다.
“일이 좋아서, 제가 신나서 하는 건데… 피곤하거나 힘들다는 생각은 별로 안 해본 것 같은데요?”
그는 1967년생, 44세, 미혼이다.
우리가 일하기 싫은 이유
일하기 싫은 이유? 어리석은 질문이다. 사람들로 미어터지는 출근길, 의미 없이 길어지는 회의, 넘치는 잡무, 눈치 보이는 퇴근, 참견장이 선후배…. 나, 정말 많은 이유를 댈 수 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일하기’ 싫은 거지, ‘일’이 싫은 건 아니다.
‘스마트워킹(Smart Working)’을 쓴 독일 사회과학자 마르쿠스 알베르스는 사무실에서 효율 잡아먹는 주범으로 회의, 이메일, 전화를 꼽았다. 2002년 노벨경제학상을 탄 대니얼 카너먼 캘리포니아대 심리학 교수는 늘 똑같은 출퇴근길이 사람들을 불행하게 만든다고 주장했다. 그가 미국 직장 여성 909명에게 하루 중 기분을 시간대별로 물었더니 출퇴근 시간이 2.6점(10점 만점)으로 가장 낮았다.
더도 바라지 않는다. 출근을 2시간만 늦출 수 있다면. 아침마다 만원버스에 시달리지 않아도 된다면. 일주일에 한번쯤 분위기 좋은 카페에서 노트북을 펴놓고 일할 수 있다면. 회의를 메신저로 대신한다면. 틀에 박힌 사무실 일상, 완전히 벗어날 수 있다면.
이걸 목표로 활동하는 단체가 있다. 영국 ‘원격근무협회’. 모든 형태의 원격근무를 장려하려고 1993년 설립됐다. 회원이 7000명 넘는 유럽 최대 로비집단 중 하나다. 이렇게 주장한다. “원격근무는 혼잡통행료나 단속카메라보다 교통체증과 공기오염을 더 많이 줄여줄 수 있다. 단, 정말로 사람들의 행동을 변화시키자는 전제 아래 이뤄져야 한다.”
네덜란드 ‘E-워크 재단’은 1995년 교통부의 교통체증 해소 프로젝트를 계기로 출범했다. UMTS(세계 어디서나 로밍 서비스를 제공하는 유럽 3세대 이동통신 기술) 같은 스마트워크 인프라 확충을 주장한다. 2007년 현재 네덜란드 공공분야 근로자의 49%는 스마트워크를 하고 있다.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중 가장 많이 일하지만 노동시간당 국내총생산(GDP)은 최하위권이다. 2009년 OECD 회원국의 연평균 근로시간은 미국 1681, 일본 1714, 영국 1646, 프랑스 1554, 독일 1390시간인데 한국은 2232시간이다. 반면 노동시간당 GDP는 미국 56.8, 일본 38.2, 영국 45.8, 프랑스 54.7, 독일 53.1달러고, 한국은 25.2달러에 그쳤다.
대통령 소속 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는 지난해 7월 ‘스마트워크 활성화 전략’ 토론회에서 스마트워크를 ‘영상회의 등 정보통신기술을 이용해 시간·장소 제약 없이 업무를 수행하는 유연한 근무형태’라고 정의했다. 국립국어원은 스마트워크를 대신할 우리말로 ‘원격근무’를 선정했다. 이는 분명 중요한 요소지만 전부는 아니다.
정부 말대로 첨단 원격근무 시스템을 갖춘 스마트워크 센터를 2015년까지 500곳으로 늘리고(현재 2곳), 스마트워크 촉진법을 제정해서, 2015년까지 원격근무 비율을 전체 근로자의 30%(현재 원격근무자 비율은 통계가 없다. 전문가들은 전체 근로자의 0.7%, 공공부문은 2.4% 수준이라고 가늠한다)까지 높이면 한국인의 ‘워크’는 정말 스마트해지는 걸까?
스마트워크란
박용후 이사는 스마트워크를 ‘목적 중심으로 일하기’라고 했다. 일하는 과정을 통제하는 게 아니라 철저히 결과 중심으로 일하고 평가하는 게 스마트워크라는 얘기다.
“상사들이 하는 게 뭡니까? 직원들이 제시간에 출근하는지, 너무 일찍 퇴근하지는 않는지, 회의에 꼬박꼬박 나오는지, 점심시간 지키는지 주시하고 감시하죠. 눈앞에 안 보이면 혹시 농땡이 치는 건 아닌지 불안해합니다. 이건 개인과 조직의 생산성과는 아무 상관이 없어요. 상사의 진짜 업무는 직원들에게 분명한 목표를 주고 이를 달성하게 조언하고 달성하나 지켜보다 평가하는 겁니다. 스마트워크를 가로막는 건 회사와 집의 거리가 아니라 상사와 부하, 동료 간의 ‘거리’예요.”
그는 2000∼2001년 직원 180명 벤처기업 디지털라이프코리아 대표를 지냈다. 사이버 비서 ‘네타바타’로 음성정보기술 업계에선 꽤 알려진 업체였다. 귀여운 아바타가 컴퓨터 모니터에 등장해 주인이 “메일” 하면 전자우편 열고, “한글 열어봐” 하면 한글프로그램을 실행하는 식이다. 10년도 더 전인데 일하는 방법에 대한 철학은 지금과 크게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직원들 출퇴근 시간, 당연히 없었고요. 한 달에 몇 시간 근무했는지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어요. 여의도 사무실에 2층 침대랑 소파 갖다 놨더니 어떤 놈은 누워서 일하고 어떤 놈은 헤드폰 끼고 음악 들으며 일하고 가지각색이더군요. 사람마다 가장 일하기 편한 장소가 있고 자세가 있는 건데, 직원들이 일하고 싶을 때 일하고, 쉬고 싶을 때 쉬게 했을 뿐이에요. 저는 약속한 시간에 결과물을 제대로 내는지만 봤고요.”
직원 채용도 전적으로 팀장에게 맡겼다. 사장 면접을 없애고 사원들이 직접 함께 일하고 싶은 동료를 뽑게 했다. 나중에 “이런 사람 뽑았습니다” 보고만 받았다. 국내 최초로 음성기술과 캐릭터 결합한 서비스를 개발했던 힘은 ‘자율’이었다고 그는 지금도 믿고 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