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호의 아프리카] 인종 전시

입력 2011-04-21 17:49


사라 바트만이라는 여인이 있었다. 200여년 전 남아프리카에서 부시먼이라 불리는 코이코이족의 딸로 태어났다. 유독 돌출한 둔부 때문에 유럽에서 ‘인종전시’를 하면 돈을 많이 벌 수 있다고 유혹하는 영국인 군의관을 따라 대서양을 건넌다. 여인의 나이 스무 살이었다. 유럽 여성과 다른 신체를 가졌다는 이유로 여인은 당시 제국주의 유럽의 인종학자, 박물학자, 인류학자들의 지대한 관심을 한 몸에 받았다.

학자들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에게도 신체적 차이에 대한 호기심, 나아가 성적 관음증의 대명사가 된 사라 바트만은 영국 런던의 피카딜리와 프랑스 파리에서 인종전시를 당하며 선풍적인 ‘인기’를 누리게 된다. 하지만 무려 5년 동안 연일 이어지는 비인간적 노역과 수모를 견디지 못해 1815년 12월 27일 스물여섯 해 생일을 사흘 앞두고 파리에서 숨을 거뒀다.

비극은 여기서 멈추지 않았다. 여인의 시신은 당시 나폴레옹의 주치의이자 유럽 최고의 해부학자였던 조르주 퀴비에에게 양도됐다. 퀴비에는 사라 바트만의 시신에서 뇌와 생식기를 분리해낸 다음 ‘인간이 멈추고 동물이 시작되는 고리’를 찾아내는 연구에 몰두했다. 그 후 사라 바트만의 유해는 뇌와 생식기를 절단 당한 채로 장장 한 세기 반을 프랑스 오르세 박물관에 소장 및 전시됐다.

1994년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정권을 접수한 남아프리카 공화국 넬슨 만델라 정부는 세계 NGO(비정부기구) 단체의 지원을 등에 업고 사라 바트만의 유해를 돌려 달라고 프랑스 정부를 강력하게 압박했다. 7년에 이르는 외교전 끝에 귀향한 사라 바트만의 유해는 마침내 고향인 이스턴 케이프의 감투스 강가에 묻혔다.

헌법까지 거론하며 사라 바트만의 유해 반환을 강력히 거부하던 프랑스 정부가 입장을 선회하게 만든 일등공신은 뜻밖에도 한 편의 시였다. ‘나, 당신을 해방시키러 여기 왔나이다/ 괴물이 되어 버린 인간의/ 집요한 눈들로부터/ 제국주의의 마수를 가지고/ 어둠 속을 살아내는 괴물/ 당신의 육체를 산산이 조각내고/ 당신의 영혼을 사탄의 영혼이라 말하며/ 스스로를 궁극의 신이라 선언한 괴물로부터(중략).”

다이아나 퍼러스가 쓴 이 시는 ‘스스로를 궁극의 신이라 선언한 괴물’을 조상으로 모시고 있던 프랑스 상원의원들의 마음을 움직여 결국 사라 바트만의 유해를 남아공으로 반환하게 만들었다. 뿐만 아니라 튀니지계의 유명한 프랑스 영화감독으로 하여금 여인에 관한 영화를 만들어 ‘제국주의의 마수’가 과학의 이름으로 저지른 참상을 낱낱이 반성하게 했다.

고함과 욕설 그리고 협잡과 선심성 구호로 가득한 세속의 언어가 아닌 단 한 편의 시가 높은 수준의 정치적 소통을 가능하게 만드는 시대. 희극의 시대일까, 비극의 시대일까.

<아프리카문화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