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 손끝으로 보다… ‘엄마 곰을 도와요’ 촉각 그림책의 세 주인공

입력 2011-04-21 18:54


열세 살 서영이 손끝은 파르르 떨렸다. 눈은 꿈꾸듯 반쯤 감겨 있다. 시선은 바닥에 둔 채, 왼손 중지와 약지, 오른손 검지와 중지 약지를 펴서 책 표지에 새겨진 점자를 빠르게 더듬는다. ‘창작 동화/ 곰돌이의 하루/ 엄마 곰을 도와요’.

시각장애아 특수학교인 광주광역시 덕흥동 세광학교 3층 교실. 장애인의 날을 이틀 앞둔 18일 서영이에게 세상에 딱 한 권뿐인 그림책이 도착했다. 앞을 보지 못하는 어린이가 손으로 그림을 볼 수 있게 만든 ‘촉각책’이다.

책을 펴고 왼쪽 페이지를 서영이가 읽기 시작했다. “따뜻한 아침 해가 떴어요. 아기 곰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잠옷을 벗고 하루를 시작해요.” 오른쪽에는 잠옷 입은 ‘곰 인형’과 노란색 ‘옷장 인형’이 부착돼 있다. 바탕은 종이 대신 흰색 부직포. “단추를 풀고 잠옷을 예쁘게 개어 주세요.”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 글을 읽고, 서영이가 곰 인형의 잠옷 단추를 풀기 시작했다. 한 개, 두 개, 세 개. 차곡차곡 개지는 못했어도 옷장 안에 집어넣었다. 교실 천장 형광등 쪽을 향해 고개를 든 서영이 눈이 커졌다. 콧잔등에 주름이 인다. 아기 곰 배꼽에 붙은 단추를 만지곤 까르르 웃었다.

-곰 인형 좋아해요?

“… 음….”

-책을 다 읽었는데, 뭐가 제일 기억에 남아요?

“… 어… 단추 풀고요. 음… 옷장 속에 넣는 거.”

-서영이는 꿈이 뭐예요?

“독서선생님이요.”

-곰돌이 나오는 이런 책, 전에 본 적 있어요?

“음… 안 만져 봤어요.”

나는 질문을 잘못했다. 서영이에게 책은 보는 게 아니라 만지는 것이다. 설치미술가가 기획하고, 미혼모가 만들고, 서영이가 만졌다. 열세 살 어린이에게 안마사나 침술사가 아니라 독서선생님을 꿈꿀 수 있게 해줄 그림책 이야기다.

소하지민(27·여)씨는 자신을 이렇게 불러 달라고 했다. 이 인터뷰를 위해 만든 가명인데 예전 동방신기 멤버들처럼 넉자로 지었다. 자기가 가끔 예명으로 쓴다는 ‘소하’에다 딸 이름 지을 때 최종 후보 2개 중 탈락한 ‘지민’을 붙였다. 이래야 그가 누군지 사람들이 모른다.

지난 16일 밤 9시 서울 지하철 2호선 낙성대역 인근 카페에 19개월 된 딸을 안고 나타났다. 1시간 늦은 건, 아마도 아기 키우는 사람들이 늘 그렇듯 외출 준비 마쳤는데 아기가 심하게 울었거나 기저귀를 갈아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더구나 그는 아빠 없이 혼자 아이를 키운다.

“스토리도 제가 썼어요. 시각장애아는 옆에서 부모가 도와주지만 언젠간 자기가 혼자 해야 하잖아요? 이 책을 통해 스스로 할 수 있다는 생각을 심어주고 싶었어요. 이건 앞을 볼 수 있는 제 딸에게도 하고 싶은 말이에요. 곰돌이가 주인공인 건 지민이가 좋아해서요.”

지난해 4월부터 10월까지 매일 밤 딸을 재워 놓고 실과 바늘을 들었다. ‘이태리 장인’은 아니지만 한 땀 한 땀 바느질로 인형 만들고, 단추 꿰매고, 박음질해서 13쪽 그림동화 ‘엄마 곰을 도와요’를 만들었다. 책장을 넘길 때마다 왼쪽엔 이야기를 새긴 점자, 오른쪽엔 그 이야기에 맞는 인형과 각종 소품이 붙어 있다.

지민이도 읽을 수 있도록 점자 옆에 검정 실로 같은 이야기를 한글로도 새겼다. 세상엔 앞을 보는 부모와 시각장애 자녀만 있는 게 아니다. 그 반대도 있다. 시각장애 엄마가 앞을 보는 아이를 품에 안고 이 책을 읽어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분들은 자녀에게 그림책 한 권 못 읽어 주는 게 한이라 하더라고요.”

4쪽은 엄마 곰이 청소하고, 아기 곰이 장난감을 치우는 내용이다. 5쪽에 장난감들과 주머니가 ‘붙어’ 있다. 서영이는 장난감들을 책에서 ‘떼어내’ 주머니에 넣고 단추를 채웠다. 책장을 넘기니 아기 곰은 엄마를 도와 빨래주머니 지퍼를 열고 옷을 넌 뒤, 낙엽을 쓸고, 아기 토끼와 빵을 나눠 먹었다. 그러곤 잠옷을 벗고 잠자리에 쏙 들어간다.

빵 만들 때 소재를 여러 번 바꿨다고 한다. 스펀지로 했는데 느낌이 나지 않아 지민이 업고 동대문과 의정부 옷감시장을 돌아다녔다. 해답은 문방구에 있었다. 마우스패드 손목 보호대에 사용하는 노란색 ‘매직폼’. 갈색 물감 입히고, 토끼와 나눠 먹을 수 있게 가운데 살짝 칼집을 냈다.

소하지민씨를 만나고 이틀 뒤 광주에서 이 책을 만진 서영이에게 물었다.

-이게 무슨 빵 같아요?

“카스테라요.”

설치미술가 문미희(31·여)씨. 회화를 전공했다. 이젤 세우고 캔버스에 물감 칠하는 그림. 그는 이걸 ‘평면 작업’이라고 한다. 새로운 아름다움을 찾고 싶었다. 실과 바늘과 천으로 만드는, 입체적인 설치미술에 뛰어들었다.

2009년 우연히 다큐멘터리 감독 최세영씨가 ‘문화살롱 공’에 들렀다. 경기 북부에서 유일한 대안 문화공간이자 문씨를 비롯한 작가들의 작업실이고 갤러리다. 최 감독이 일본에서 가져온 촉각 그림책을 보여줬다. 뒷머리를 망치로 맞은 느낌이었다고 한다.

“저는 작가예요. 시각이 생명이죠. 먼저 봐요. 보고 난 뒤 느끼고, 그걸 색으로 표현하죠. 그런데 눈이 아닌 손으로 보는 세상, 그 이야기를 접하면서 또 다른 세계구나… 그들의 시각으로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문씨는 시각장애인 시설을 수소문했다. 세광학교 옆에 있는 영광원에서 한번 와보라 했다. 집이 멀어 세광학교로 통학할 수 없거나 부모에게 버려진 시각장애아들이 생활하는 곳이다. 그는 지난해 1월 여기서 자원봉사를 했다. 촉각 그림책을 만들려면 이 아이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먼저 봐야 했다.

영광원 아이들 가운데 시각만 잃어버린 아이는 한 명뿐이었다. 대부분 시각장애와 함께 자폐, 지체부자유 등 중복장애를 가졌다. 대화가 쉽지 않았다. 문씨는 “그냥 놀아줬다”고 했다.

이런 시설에서는 외부인을 곱게 보지 않는다. 아이를 가르쳐 스스로 화장실 가서 용변 보게 만드는 데 10년이 걸린다. 주말에 하루 자원봉사 하는 사람들은 불쌍하다고 기저귀 채워주고 안아준다. 다음날 그들이 떠나면 아이는 다시 바지에 오줌을 싸고, 선생님들은 다시 화장실 앞에서 아이와 싸워야 한다. 영광원은 촉각 그림책 만들고 싶다는 말에 이런 어려움을 감수하고 문씨를 받아줬다.

영광원 자원봉사가 끝나고 그는 일본 도쿄행 비행기에 올랐다. 시각장애인 화가 미쓰시마 다카유키(光鳥貴之)를 만나러 갔다. 그가 사물을 만져보고 그 느낌으로 그림 만드는 법, 그걸 배웠다.

이런 식이다. 앞이 보이는 화가는 스타벅스에서 아이스 아메리카노 마시는 여인을 그릴 때 머리카락과 플라스틱 컵, 빨대와 입술을 원근법으로 묘사한다. 시각장애인 화가는 컵에 담긴 얼음과 빨대를 타고 흐르는 커피와 그게 도달하는 위장까지 그린다. 그리고 이걸 요철(凹凸)로 새긴다. 눈을 감고 손끝으로 따라가며 느끼는 이미지이기 때문이다.

한국에 돌아와 4월부터 만지는 그림책으로 시각을 치유하자는 ‘나누미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여기서 핵심은 나누는 행위다. 경기 의정부 대한사회복지회 늘푸른집 미혼모들이 책을 만들었다. 의정부 소망교회 노인대학의 할머니 할아버지도 동화 속 캐릭터들을 그리고 바느질했다. 광주 세광학교와 영광원의 학부모와 자원봉사자들도 별도의 책을 제작했다.

소하지민씨의 ‘엄마 곰을 도와요’를 비롯해 13권이 세상에 나왔다. 문씨는 이들에게 ‘보이지 않는 아름다움’을 설명하고 같이 밑그림 그리고 바느질을 도왔다. 이 과정 자체가 설치미술가 문씨의 2010년 대표작이 됐다.

서영이 엄마 정정숙(41)씨는 나누미 프로젝트의 열혈 학생이었다. 그저 남들과 함께 책 제작에 손을 보탠 정도가 아니라 서영이만을 위한 책을 혼자서 제작했다. 자기 옷의 단추를 잠그지 못하고, 신발 끈 매지 못하는 서영이를 위해 촉각책 ‘I can do!’를 만들었다. 서영이가 아주 어렸을 때 입던 옷과 바지, 매던 소풍가방, 신던 운동화를 재료로 썼다. 왼쪽에 영어 ‘button(단추)’을 점자로 새겼고 오른쪽에 서영이가 입던 셔츠를 붙여 실제 단추를 채워보도록 했다. 내년이면 중학교에 진학하는 서영이는 이제 영어 점자도 배워야 한다.

정씨는 서영이가 남들보다 좀 늦다고 했다. 한 번 얘기할 것을 네 번, 다섯 번 말해야 한단다. 키도 또래보다 한 뼘 정도 작고, 팔다리도 가늘다. 임신 8개월째 조산아로 태어났다. 생후 5개월 때 조산아망막증 진단을 받았다. 낮인지 밤인지 정도만 구분하는 전맹(全盲)이다.

“아이가 눈을 잘 맞추지 못했는데, 조산아라 그런가보다 했지요. 좋은 병원 가면 고칠 수 있겠지 하면서 대여섯 곳 다녔어요. 어디선 낮에도 못 보는 야맹증이다, 어디선 시신경 장애다 등등 진단이 다 다르더라고요. 근데 아이는 불빛을 좇아가는 듯해 보이고. 항상 불빛을 좇아 등을 대고 누워 있어서 뒤통수에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을 정도였죠. 그래서 전 밤마다 불빛 아래서 춤을 췄어요. 제가 움직여 어두웠다 밝았다 하면 아이가 좋아하는 거예요. 혹시 나중에 보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도….”

서영이는 다섯 살 때 성장장애가 왔다. 지금도 석 달에 한 번씩 삼성서울병원에 가서 치료를 받는다. 열한 살 때는 척추측만증과 함께 빈혈도 왔다. 서영이는 이날도 가녀린 몸에 플라스틱 교정용 조끼를 입고 있었다. 그걸 입힐 때마다 엄마의 심장은 다시 흔들린다. 정씨는 “눈이 아파도 좋으니 더는 아프지 말았으면 좋겠다”고 했다.

정씨는 서영이가 “시를 그냥 시처럼 느끼는 아이”라고 말했다. ‘나비처럼 날아다닌다’고 표현하면 코끼리도 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계기가 있다. 앞을 보는 동생에게 장난감으로 사준 플라스틱 동물 모형 중 코끼리와 나비가 있었다. 둘을 만진 서영이 머릿속에는 코끼리와 나비가 같은 크기다. 그렇다고 동물원에 가서 코끼리를 구석구석 만지게 할 수도 없고, 나비는 쥐어주면 날개가 부서진다. 서영이가 오해 없이 이미지를 제대로 그리려면 촉각 그림책이 필요하다. 정씨는 “‘엄마 곰을 도와요’를 만들어준 엄마의 마음, 느낄 수 있어요. 어떤 건지”라고 말했다.

소하지민씨는 오히려 자신이 치유됐다고 했다. 그림 그리고 글씨 예쁘게 쓰고 바느질하는 게 재미있어 참여했는데 “만들면서 마음이 더 강해졌다”고 말했다.

그는 2009년 9월 지민이를 낳았다. 가족에게 알릴 수 없었다. 만삭 임산부를 보호하는 시설 늘푸른집 입소 2개월 만이었다. 몇 달 전까진 대학에서 행정조교로 일했다. 03학번. 헤어졌다 다시 만난 남자친구가 아이 아빠였다.

“처음엔 같이 키우자고 하다가. 근데 걔도 자기 삶이 있으니까요. 다음엔 지우라고 하더라고요. 그럼 연락하지 말자고 했죠. 저보다 어린 친구였어요. 그 뒤로 아버지 성화에 지민이 주민등록 할 때 한 번 더 연락했는데. 그 뒤론 안 해요. 지민이에게 제 성(姓)을 줬어요.”

늘푸른집 입소 때는 지민이 문제로 고민했다. 이곳 미혼모는 3층 입양방과 4층 키움방에 나뉘어 있다. 출산하면 아이를 입양시킬 엄마와 직접 키울 엄마가 다른 층에서 지낸다. 3층에 가려 했는데, 자리가 없어 4층에 머물다가 다른 엄마들을 보고 마음을 바꿨다. 이 결심을 굳히게 힘이 돼준 게 ‘곰돌이의 하루, 엄마 곰을 도와요’였다고 한다.

“책을 만들면서 지민이가 건강하게 태어난 것만도 얼마나 감사한지 알게 됐어요. 장애가 있었다면 더 슬펐을 텐데. 아이들이 얼마나 힘들까. 그 부모님은 얼마나 더 힘들까.”

소하지민씨는 올해 문미희 작가와 함께 두 번째 책을 기획 중이다. 이달 초부터 학습지 선생님으로 일하고 있어서 평일 10시는 돼야 귀가하지만, 꼭 하고 싶단다. 문씨는 나누미 연구소를 설립해 좀 더 쉽게 ‘보이지 않는 미술’을 나누고 그 성과를 모아 촉각 그림책을 만들고 싶어 한다. 나누미 프로젝트 덕에 광주에서 결성된 나누미 어머니회는 다른 도시의 비슷한 어머니들을 끌어 모을 예정이다. 이미 부산에서 한 차례 모임을 갖기도 했다.

문씨는 “촉각책이 제가 처음은 아니다”고 했다. 2004년부터 공공문화센터 유알아트나 도서출판 점자에서 몇 권씩 만들었다. 하지만 국내 점자도서관조차 촉각책을 보유하고 있지 않다. 복지 문제에 왜 예술가들이 나서냐는 시선에, 올해 수백만원짜리 문화재단 기금 지원 심사에서도 두 번 낙방했다. 이게 복지냐, 예술이냐 따져야 할 일인가?

문씨의 말이다. “일본은 촉각 그림책만 5만권이 넘는대요. 시각장애아의 수업이 끝나길 기다리며 엄마와 주위 분들이 함께 만든 거래요. 그게 40년이 넘었어요. 제가 해보고 싶은 일이에요.”

광주·의정부=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