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교회의 역사

입력 2011-04-21 18:51


성 어거스틴의 신학사상(1)

1. 마니교와의 논쟁

어거스틴의 신학사상은 학문의 상아탑 속에 갇혀서 명상과 사변을 통해 형성된 것이 아니고, 구체적 현실 속에서 신학적 논쟁을 통해 무르익어 간 것이다. 따라서 그의 신학은 교회적 상황 속에서 일어난 ‘살아 있는 신학(living theology)’이며, 기독교 신앙을 변증한 ‘변증신학(Apologetic Theology)’이다. 그의 생애에 크게 세 가지 논쟁이 일어났다. 마니교와의 논쟁, 도나티스트와의 논쟁, 펠라기우스주의와의 논쟁이 그것이다.

첫째는 마니교(Manichaeism)와의 논쟁(386∼395년)이다. 어거스틴의 초기 작품들 가운데 대부분 저술은 마니교를 반박하는 것이었다.

마니교는 영지주의적(Gnosticism) 이원론을 갖고 창조를 이해한다. 여기서 영지주의는 영적 지식(gnosis)을 통해서 구원받음을 강조하고, 영과 육을 이원론(dualism)적으로 구분 짓고, 영은 거룩하며 육은 더럽고 속된 것으로 이해한다. 이러한 영지주의적 이원론으로 인해 우주와 역사를 빛과 어두움, 선과 악, 영과 육의 대립과 갈등으로 이해하고, 창조 때부터 선만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악까지도 만들어졌음을 강조한다. 이것은 우주와 역사가 열등신(Demiourgos)에 의해 창조되었기에 선과 악이 공존한다는 영지주의적 창조론과 통한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일원론(monism)에 입각하여 하나님의 선하신 창조, 아름다운 창조만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악을 만들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그러면 악은 무엇이며, 악은 어디서 왔는가? 어떻게 악의 존재를 설명할 수 있겠는가? 어거스틴의 대답은 분명하다. 그는 악을 선의 부패(privation), 타락(lackness), 결핍(absence), 상실(corruption)로 이해한다. 그는 선한 천사 루시퍼(Lucifer)가 타락함으로써 선을 상실하고 악마가 되어 뱀의 모습으로 나타난 것으로 이해한다. 따라서 본성에 있어서는 악마라 할지라도 선하며 다만 선한 본성이 악하게 타락하고 부패한 것이라고 설명한다.

마니교에 대항한 논쟁에 있어서 의지의 자유에 관한 문제는 특별한 중요성을 지닌다. 마니교는 영원부터 영원까지 선과 악의 싸움으로 역사가 정해져 있다고 믿는 결정론(determinism) 혹은 운명론(fatalism)이다. 어거스틴은 이러한 결정론 혹은 운명론을 비판하며 자유의지의 역할이 한 개인과 역사에 있어서 중요함을 역설한다. 어거스틴은 그의 저서 ‘자유의지론’에서 인간이 운명의 거미줄에 걸린 인형이나 저항 의지 없이 떨어지는 돌 같은 존재가 아님을 강조한다. 하나님은 창조 시에 인간을 하나의 인격체로 만드셨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부여하신 자유의지가 자유롭지만 항상 선한 것은 아니라고 해석한다.

2. 도나티스트와의 논쟁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안은 성경책을 불태우거나 버리도록 강요하였다. 이때 성경책을 버린 배교자들이 나오게 되었는데, 배교한 감독 펠릭스가 안수하여 북아프리카 카르타고 감독이 된 카이리아누스의 감독 안수식을 무효로 선언하였다. 그리고 맨사리우스를 새 감독으로 성별시켰으나 그는 곧 죽고 도나투스 감독이 계승하게 되었는데 그의 이름을 따서 그들을 도나티스트라고 부르기에 이르렀다.

김홍기 총장 (감리교신학대학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