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태수의 영혼의약국(96)

입력 2011-04-21 09:09

히말라야의 '오 솔레미오!'

그대의 삶이

타인에 대한 불평과 원망으로 가득할 때

아직 길을 떠나지 말라

그대의 존재가

이루지 못한 욕망의 진흙탕일 때

불면으로 잠 못 이루는

그대의 반이 사랑의 그믐일 때

아직 길을 떠나지 말라

쓰디쓴 기억에서 벗어나

까닭 없는 기쁨이 속에서 샘솟을 때

불평과 원망이 마른 풀처럼 잠들었을 때

신발 끈을 매고 길 떠날 준비를 하라

생에 대한 온갖 바람이 바람인 듯 사라지고

욕망에 여윈

순결한 사랑이

아침노을처럼 곱게 피어오를 때

단 한 벌의 신발과 지팡이만 가지고도

새처럼 몸이 가벼울 때

맑은 하늘이 내리시는

상쾌한 기운이 그대의 온몸을 감쌀 때

그대의 길을 떠나라.

‘상쾌한 뒤에 길을 떠나라’는 고진하의 시이다. 장자도 그랬다던가, 그믐엔 길을 나서지 말라고! 마침 우리가 히말라야의 랑탕을 찾은 때는 보름이었다. 그러니 낮의 풍경도 풍경이려니와 밤의 그 진득한 달빛은 어떠했을까? 어둑어둑한 저녁 시간에 밤부(2030m)에 도착했다. 히말라야 계곡에서의 첫날밤이다. 샤부루베시에서 줄곧 계곡의 오른쪽으로 오르다가 드디어 왼쪽으로 갈라서는 지점에 이른 것이다. 스물여덟 살 난 주인장과 예쁘장하게 생긴 그의 아내, 그리고 거무튀튀해서 더욱 강하게 느껴지는 그들의 어린 아들이 롯지를 지키고 있었다. 랜턴을 켜고 저녁 식사를 했다. 그리고는 곧 설산이 훤히 내다보이는 창이 달린 방에 누웠다. 계곡물 흐르는 소리가 마치 바다와 같아서, 산에 들었는지 바다에 빠졌는지 모를 지경이다. 달은 동에서 서로 흐르고, 물은 남에서 북으로 흘렀다. 자다 깨면 달이고, 깨다 자면 다시 달이 나를 쫓아왔다. 히말라야의 품에 든지 하루밖에 되지 않았지만 태양은 장엄한 산에 가려 쉬이 드러나지 않았다. 여기선 산이 곧 태양이다. 그러나 밤이 되면, 그 장엄의 바다를 모두 침묵케 하는, 높이와 넓이를 무력하게 하는 달빛이 산과 태양을 무릎 꿇리고 있었다.

히말라야의 높은 산봉우리며, 천둥 치듯 하늘로부터 쏟아져 내리는 물줄기, 하늘을 가득 덮어 가끔 높이를 망각케 하는 원시림은 모두 달빛이 먹이고 키운 것들이다. 히말라야에선 산이 높아 태양도 깊으니 그도 그만 달이 된다. 그러나 너무 깊어 히말라야에 사는 사람들은 밤이 되어도, 아무리 휘영청 달이 밝아도 우리처럼 집 밖으로 나와 놀이를 하지 않는다. 그저 납작 엎드려 있다. 그게 우리와 다르다면 다르다. 달빛의 무게가 너무 무거워서일 게다. 그러나 나는 누군가! 팔월 한가위의 ‘강강수월래’, 정월 대보름에는 ‘답교놀이’를 하던 민족의 자손이 아닌가! 얼마나 달을 사랑하는 민족이었으면 '패관잡기(稗官雜記)'에 ‘답교’는 사랑의 다리를 건너는 행사라고 했을까. 달이 있고 님이 있고, 그래서 더없이 행복해지는 게 달밤이었다. 그런 내게 랑탕에서 맞는 보름달이 밤새 얼마나 내 영혼을 보챘을까, 히말라야에서 돌아온 지 달포도 더 지난 지금도 마음이 넘친다. 태양을 노래하는 서구인들은 히말라야에서 보름달을 만나도 나와 같지는 않을 테다. 그들의 노래는 태양을 찬송하는 '오 솔레미오'이니까.

오 맑은 햇빛 너 참 아름답다

폭풍우 지난 후 나 더욱 찬란해

시원한 바람 솔솔 불어올 때

하늘의 밝은 해는 비추인다

나의 몸에는 사랑스런

나의 햇님뿐 비추인다

오 나의 나의 햇님

찬란하게 비추인다.

밤부의 보름달은 닷새 동안 나를 따라 다니며 거문고를 뜯고 차를 따랐다. 낮에 히말라야를 걸어서가 아니라 밤마다 달빛에 노닐어 신선이었다. 계수나무에 토끼며, 은하수를 건너는 조각배, 푸른 달빛 속에서 유년의 사진들이 밤마다 인화되고 있었다. 히말라야의 만년설은 달이다. 기울고 차서 몇 번이나 다시 탄생하므로, 변하나 변하지 않은 신비를 닮았으니 말이다. 히말라야 말로 달빛처럼, 무수한 죽음과 삶의, 그리고 절망과 희망의 그림자가 아닌가! 그러고 보니, 해마다 고난과 부활을 거듭하므로 '영원'을 선물하시는 예수님도 히말라야를 닮았다. 그리고 그는 우리들 뭇 영혼들과 생명들의 보름달이기도 하다.

"예수께서 그들을 데리고 베다니 앞까지 나가사 손을 들어 그들에게 축복하시더라. 축복하실 때에 그들을 떠나 하늘로 올라가셨다."(눅 24:50-51)

<춘천 성암감리교회 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