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감 몰아주기 규제” 큰소리치더니… 헛구호 되나

입력 2011-04-20 21:21


최근 현대캐피탈의 고객정보 유출사건 등과 관련, 공정거래위원회가 “계열사 간 부당 내부거래 여부를 집중 들여다보겠다”며 조사 의지를 밝혔다. 현대캐피탈의 보안 등 전산 시스템 관리를 현대차그룹의 시스템통합(SI) 관련 비상장 계열사인 현대오토에버가 맡아 왔다는 점에서 이번 사건이 ‘일감 몰아주기’의 폐해를 보여준 것이라는 지적에 따른 것. 그러나 정작 내부적으로 이 같은 일감 몰아주기 규제에 대한 회의론이 팽배하다.

공정위 고위 관계자도 20일 “일감을 몰아주는 현상 자체는 굳이 조사하지 않아도 이미 각종 공시와 회계 감사 보고서 등을 통해 알 수 있다”면서 “문제는 그것이 부당한 거래여야 한다는 것이고, 무엇보다 현행법상 시장 경쟁 질서를 저해했는지까지 입증해야 하기 때문에 (제재가) 어렵다”고 토로했다.

이명박 정부가 ‘공정사회’를 강조하면서 ‘일감 몰아주기’ 제재가 주요한 과제로 떠올랐지만, 현실적인 한계 등을 이유로 추진 동력이 이미 상실된 것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현대차그룹의 현대오토에버에 대한 일감 몰아주기 사례만 해도 이미 공정위의 ‘감시’ 대상에 올라 있는 케이스다. 공정위는 지난해 대기업의 계열사 부당 내부거래에 대한 조사를 강화하겠다며 아예 SI업체와 보험·자동차·물류업체 등 구체적인 감시 대상까지 언급했었다. 그러나 최근 부당 내부거래로 단속, 처벌된 케이스는 태광그룹 한 건에 불과하다. 계열사 간 내부거래는 엄연히 나타나고 있지만, 그것이 부당한 것을 입증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게 공정위 측 설명이다. 1990년대 후반 공정거래법에서 부당 내부거래 행위를 규제하기 시작한 이래 단속 건수는 계속 줄어들고 있다. 공정위 관계자는 “그동안 제재한 부당 내부거래 건도 절반 이상 재판 과정에서 졌다”면서 “경쟁제한성 입증의 한계가 크다”고 말했다.

공정위뿐 아니다. 지난 3월 ‘일감 몰아주기’에 대한 과세 방안을 8월까지 내놓겠다던 기획재정부도 별다른 진전을 보이지 못하고 있다. 담당자 사이에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벌써부터 나오고 있다. 재정부 관계자는 “과세하려면 과세 대상 이익이 분명해야 하는데, 정상적 거래와 일감 몰아주기에 따른 이익을 구분해 계산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면서 “하는 데까진 해보겠지만, (과세 여부를) 확언하긴 어렵다. 할 수 있었으면 벌써 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 2006년 말에도 같은 논의가 있었지만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한국경제연구원도 이날 “계열사 일감 몰아주기를 상속세나 증여세법으로 규제하는 것은 과세의 대상을 확정할 수 없기 때문에 법리상 받아들일 수 없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이에 따라 정부 내에서는 최근 개정된 상법에 따라 ‘회사 기회 유용’이 금지된 만큼 이를 통해 일감 몰아주기를 차단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이라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조민영 기자 mym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