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주연 배종옥 “환자 고통 그대로 느꼈어요”
입력 2011-04-20 21:26
TV나 스크린에서보다 훨씬 젊어 보였다. ‘얼굴이 부었다’며 사진 걱정을 하기도 하고, 민감한 질문엔 답변을 피하기도 했다. 브라운관에서의 표독한 ‘준선’이나 영화 속에서 한없이 다정했던 어머니는 거기 없었다. 영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주연을 맡은 배우 배종옥(47)을 19일 서울 태평로의 한 호텔에서 만났다.
“이제까지 엄마 역할을 여러 번 맡았지만 이미지도 매번 달랐고 감정도 매번 달랐지요. 인물과 인물 간의 관계에서 부딪치는 지점도 매번 다르고…. 한 번도 똑같이 연기해 본 적은 없어요.”
영화 촬영은 SBS 일일드라마 ‘호박꽃 순정’ 작업과 동시에 이뤄졌다고 한다. 한창 방영 중인 드라마 촬영으로 인터뷰 당일까지 살인적인 스케줄을 소화하고 있었다. 그는 “따로 운동할 시간도 없다”고 말했다.
“출연 결심이 쉽지 않았어요. 지금 드라마를 하는 입장이어서 소속사와 함께 고민을 많이 했죠. 하지만 영화계에서 좋은 시나리오 나오기가 쉽진 않잖아요. 작품이 워낙 좋으니까 욕심을 냈지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은 노희경 작가가 집필한 동명의 드라마(1994)를 원작으로 한 작품. ‘서양골동양과자점-앤티크’,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을 연출한 민규동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다. 배종옥이 맡은 역할은 치매를 앓는 시어머니의 며느리이자 대학병원 교수의 아내로 평화로운 삶을 살던 인희다. 드라마에선 나문희가 맡았던 배역인데, 이야기는 인희가 말기암 판정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죽음에 대한 이야기라고 해서) 관객에게 눈물을 강요하고 싶진 않았어요. (연기 중 눈물을) 절제하니까 감독님이 눈물을 흘리라고 하셨는데 매 장면 그렇게 하는 것도 싫었고요. 그렇지만 완성된 영화를 보니 슬픔을 강요하지 않으면서 깔끔하고, 갈등을 풀어가는 과정도 제대로 나타난 것 같네요. 저는 제 영화가 만족스러워요.” 그는 그러면서도 “긴장이 돼서 제대로 보지는 못했다”고 말하기도 했다.
과정이 쉬운 건 아니었다. 인희가 피를 토하며 절망하는 롱테이크 샷이 포함된 장면은 오후 8시부터 다음날 새벽 4시까지 촬영했다. 그때껏 자신의 병에 대해 몰랐던 주인공이 삶의 마지막을 준비하게 되는 장면이다. 배종옥은 “극 중 인희가 느끼는 고통을 그대로 느꼈던 장면”이라고 말했다.
그는 겹치기 출연을 자제하며 극 중 인물에 몰입하는 시간을 갖는 게 즐겁다고 했다. 20년을 한결같이 연기에 몰두했는데 이제는 3∼4년이 걸리더라도 노래를 배워 뮤지컬을 해보고 싶단다.
“제가 잘하는 것만 하지 않은 게 살아남은 비결 아닐까요. 늘 제가 하지 않았던 역, 두려워했던 캐릭터에 접근해 왔고 하나씩 도전할 때마다 저의 ‘시장성’이 넓어진 것 같아요. 시장 상황은 어느 시대에나 긍정적이지만은 않지요. 설 곳이 없다고 생각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면 배우는 도태될 수밖에 없어요.”
양진영 기자 hansi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