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따 호텔? 착한 호텔… 강남 역삼동 IMI호텔 ‘특별한 경영’
입력 2011-04-20 18:21
서울 역삼동 역삼역 주변은 숙박업소 밀집촌이다. 한 집 건너 한 집 꼴도 아니다. 두세 집이 다닥다닥 붙어 있다. 2011년 3월 기준 강남구청에 등록된 역삼동 숙박업소는 72곳. 인터넷 포털사이트에서 검색된 이 지역 숙박업소 수는 호텔 118곳, 여관 40곳, 리조트 콘도 38곳이다. 이곳을 찾는 손님은 크게 세 부류. 취객과 불륜 커플을 일컫는 이른바 ‘러브손님’ 그리고 비즈니스맨이다. 취객 중에는 다른 기대를 품고 불콰한 얼굴로 들어서는 사람들도 있다. 업소로선 그들이 알짜배기 손님이다. 성매매특별법 시행 이후 단속이 심해졌다지만 그때뿐이다. 언제고 다시 활활 불타오를 준비가 돼 있는 곳.
그 동네에서 평범한 부부들의 편안한 쉼터면 족하다며 호텔 문을 열었으니 역발상이라고 하기에도 좀 뜬금없다. IMI호텔 인치승(60) 사장에게 주변 업자들이 했던 얘기. “얼마나 가는지 두고 봅시다.” 얼마나가 벌써 6년째다.
개념 찬 호텔
삼성SDS멀티캠퍼스 뒤편. 쪼르륵 소규모 호텔 3개가 나란히 서 있다. 가운데가 IMI호텔이다. 외관이나 입구나 별다를 게 없다. 한국관광공사의 ‘굿스테이’, 서울시의 ‘INNOSTEL(이노스텔)’ 지정간판이 눈에 들어오는 정도다. 모범숙박업소란 얘기다. 문을 열자마자 보이는 프런트 데스크. 솔직히 사우나 입구 같은 느낌이었다. 데스크 직원이 말을 건네는데 말씨가 북쪽이다. 희한하네.
얄궂게 둘러보는데 인치승 사장이 내려왔다. 와이셔츠 바람이다. “지배인은 없나요?” “저흰 지배인이 없어요. 조직 운영 개념을 바꿔버려서 팀제로 해요. 청소팀, 프런트팀, 주방팀. ‘당신이 우리 집 전문가야’라고 하는 거지요. 경리 회계 행정관련 문서작업 예약업무는 전부 제가 해요.”
2005년 4월. 인 사장은 모범적인 숙박업소를 운영해 보자며 IMI호텔 문을 열었다. 설계할 때부터 지하에 술집이나 상업시설을 포함시키지 않았고, 성매매나 인근 유흥주점과의 연계(통칭해 ‘술집영업’이라고 함)는 일절 막았다. 역세권에 사무실이 밀집해 늘 인파가 북적대는 지역이지만 유럽의 어느 호젓한 호텔처럼 가족이 부담 없이 찾는 호텔로 만들자고 목표를 세웠다. 그리고 다른 데서 안 하는 조식 토스트 제공부터 하나둘 서비스를 특화해 나갔다. 인 사장이 소장한 미술품도 층마다 들여놓고 41개 객실을 각기 다르게 꾸몄다. 수요는 많았다. 깔끔한(여러 의미로) 호텔을 원하는 사람이 제법 됐기 때문이다. 지난해 모범숙박업소로 인증을 받으면서 외국인 손님도 늘었다. 연평도 포격, 구제역, 일본 대지진 등이 이어지면서 외국인 투숙객이 끊겼다가 최근 다시 회복되고 있다.
“지금 주위의 숙박업소는 전부 덤핑이에요. 왜냐면 성매매 단속이 심한 데다 술집이 불경기라 손님이 줄어드니까 영업이 안 되는 거예요. 요즘은 우리가 훨씬 안정적이죠.”
직원 최우선 원칙
서비스란 공짜 커피와 토스트에서부터 왠지 편하고 기분 좋은 분위기, 종업원의 밝은 웃음, 주인장과의 짧지만 유쾌한 대화 등 나열하자면 끝이 없다. 사람이 하는 일이기에 그렇다.
“직원이 제일이죠.”
종사자가 행복하고 편안하면 서비스는 절로 좋아진다. 진정한 차별화는 이 대목에서 시작된다.
인 사장은 먼저 직원 숙소 위치부터 달리했다. 통상 지하 후미진 곳에 종사자 숙소가 마련되는데 그는 호텔에서 가장 환기가 잘 되고 전망 좋은 10층에 숙소를 꾸렸다. 동급 규모 호텔, 모텔보다 사람도 2∼3명 더 채용했다. 종사자의 피로도를 감안해서다. 종사자의 세 끼 식사를 전담하는 주방 아주머니도 뽑았다.
직원을 위해 일주일에 한 번은 직접 가락동 농수산물시장에 가 제철 채소며 과일, 해산물 등을 사다 나르고, 토요일엔 특식을 만들어줄 분도 외부에서 섭외할 정도로 직원 밥상에 신경 쓴다.
전 직원 12명은 4대 보험에 가입시켰다.
“4대 보험 가입하면 회사 부담이 늘지만 직원의 마인드가 바뀌어요. 고정적인 직장이란 인식이 생기고 소속감과 책임감이 생기죠. 하지만 처음엔 저항이 있었죠. 세금과 보험료 떼고 봉급을 받으니 손해 보는 줄 안 거죠. 하지만 지금은 알죠.”
급여 지급 방식도 다르다. 다른 업소는 기본급여를 80만원(세금을 안 내는 최소단위)으로 주고 나머지는 실적수당 등으로 처리한다. 인 사장은 봉급이 180만원이라면 180만원 전부를 기본급여로 잡는다. 직원은 연말정산 때 세금을 환급받아 이 차이를 실감하게 된다.
“우리 여직원 남편이 다른 업소 직원으로 있는데 연말정산 서류를 받아주지 않는다며 찾아왔어요. 보니까 기본급 80만원으로 해서 신고하니 그 친구는 환급받을 세금이 없는 겁니다.”
마지막으로 신뢰. 그는 프런트 캐셔의 사례를 들었다. 소규모 호텔, 모텔에서 대개 프런트 캐셔는 못 믿을 직원이다. “현금을 만지잖아요. 항상 업주와 캐셔는 승강이를 해요. 한쪽에선 ‘저 놈이 도둑놈이야’, 다른 한쪽에선 ‘에잇 어차피 도둑놈 취급 받는 거 한몫 챙기기라도 해야지.’”
인 사장은 하지만 결제 시스템을 전산화했고 직원을 믿었다.
“소소한 부분에 대해선 얘길 안 했어요. 다만 결정적인 실수가 보이면 ‘그 객실 클릭해 봐. 몇 시에서 몇 시 어떻게 된 거야’라고 한 번 물어보고 확인만 해요. 우리 직원들은 사장을 믿고 사장은 직원들을 믿고. 한 번 들어온 직원은 안 나가요. 그게 핵심이에요. 경영의 핵심.”
매일 오후 1시30분
예배 시작시간이다. 월∼금요일까지. 올해로 3년째다. 남편을 잃고 장례 치르자마자 다시 일을 시작한 중국 동포 아주머니를 위로하기 위해 시작됐던 예배. 강요된 자리가 아니다.
각기 이름표가 붙은 QT책자와 성경을 들고 50∼60대 아주머니 아저씨들이 한 분 두 분 모이면 예배는 시작된다. 다같이 사도신경 암송하고 찬송 부른 다음에 인 사장이 예배를 인도한다.
“남편을 잃고 슬픔에 빠져 있다는 건 진정한 위로가 없으면 해결이 안 돼요. 한 3개월은 매일 청소하면서 우는 겁니다. 남편 생각만 나면 그냥 울고 사망 사고 소식이 TV에서 전해지면 또 울고. 한 6개월 지나니까 잦아들어요.
내가 내 마음 안에서 긍정을 찾고, 내 마음 안에서 모든 것을 바로 볼 수 있는 마음을 가지면 그것이 천국이다. 지금 이 시점, 선택하는 시점부터 천국이다. 그건 신이 인간에게 준 선물. 최고의 선물이다. 모태신앙부터 지금까지 느낀 거예요. 에덴동산을 만들고 금기를 만드셨죠. 모든 걸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주셨어요. 금기만 제외하고. 하지만 금기를 선택하는 것조차 허락하셨다는 거죠. 천당과 지옥을 선택할 수 있는 자유를 주신 게 하나님이 주신 최고의 선물이다. 증오와 갈등과 눈물 부정을 선택하면 지옥이다. 축복이라고 하는 것이 삶에서 평안이다. 지금은 우리 직원들 화평을 느껴요.”
인 사장은 모태신앙으로 서울 안동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다 현재는 서울 하계1동 이한교회(신기형 담임목사)에 다니고 있다. 평생 신앙인으로 살아오면서도 직분만큼은 거부한다. 왜. 허물 많은 인간이기에 다른 교인들 시험 들게 하고 싶지 않아서다.
어찌됐건 그런 그가 공산당에 선서를 해서 종교를 받아들일 수 없다는 동포와 새터민을 붙들고 예배를 이어가기까지 우여곡절도 많았다. 하지만 인 사장은 옛날 어머니들이 정화수 떠놓고 비는 심정에 빗대어 예배를 설명하면서 참석을 설득했고 지금까지 왔다.
예배를 꾸준히 이어오면서 달라진 점. 증오와 불안감, 자기비하에서 오던 스트레스가 사라지듯 밤잠 못 이루게 이 사람들을 괴롭히던 잠꼬대와 이갈이가 잠잠해졌다.
우리는 그저
큰 욕심도 없다. 그저 직원 12명 중 중국동포 3명, 새터민 1명, 나머지 사연 많은 한국인 직원들 함께 어우러져 살아가며 손님 맞으면 되는 것이다.
“솔직히 말해서요. 나 다른 데 얼마든지 갈 수 있어요. 하지만 사장님 너무 좋아서 난 여기다 뿌리 박았단 말이에요. 우리 아저씨 아파 돌아가고 그래서 왔다가 우리 사장님 위로 세게 해줬어요. 감동해서 여기 끝까지 일할 생각에요.”
일년 반 전에 중국 용정에서 왔다는 이 할머니(60)는 올케(57)까지 소개해 이곳에 취업시켰다.
인 사장에게 꿈을 물었다. “아 그거까진 안 다뤘으면 좋겠는데”가 돌아온 답변이었다. 12명 직원들과 신앙 안에서 허물을 벗고 상처를 치유하며 서로 생일 축하 노래 불러줘 가며 가족처럼 지내는 그런 그림이 인 사장이 그리고 꿈꾸는 내일이 아닐까.
ROTC 출신 장교로 이한빈 전 부총리겸 경제기획원 장관 비서관, 대우그룹(복지재단 등) 국제민간경제협의회(IPECK) 등을 거친 그는 인생 2모작 이왕 하는 김에 신앙 안에서 욕심 없이, 하지만 잘 해보고 싶은 마음이다. ‘아이 앰 아이’. 나는 나다.
글 이경선 기자·사진 강민석 선임기자 boky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