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에서-송세영] 그들이 거리로 나선 이유
입력 2011-04-20 17:50
그룹 ‘부활’의 리더 김태원씨가 최근 한 TV 프로그램에 나와 장애를 가진 아들 이야기를 털어놓았다. 아내의 소원은 아들보다 단 하루라도 더 사는 것이라고,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아내는 너무나 큰 상처를 받았으며 이것이 아내와 아이들이 외국에서 살고 있는 이유라고, 우리 가족처럼 상처를 받고 떠나거나 아예 밖에도 나오지 못하는 분들이 많다고, 언젠가는 같은 병을 앓고 있는 이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사람들의 마음을 흔든 것은 인기 연예인인 그에게도 남모르는 아픔이 있다는 사실이 아니었다. 사랑하는 아들을 아버지 곁에 두지 못하게 만든, 장애아동들에 대한 각박한 시선과 열악한 복지환경이 보는 이들을 부끄럽게 만들었다.
‘장애인의 날’인 20일 다른 이름의 김태원들이 기념식이 열린 서울 효창동 백범기념관에 모여들었다. 이들은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과 면담을 요구하며 식장 진입을 시도하다 경찰과 충돌을 빚었다. 19일에는 서울 계동 보건복지부 청사를 찾아가 연좌농성을 벌였다. 여의도 국회 앞에서는 지난 12일부터 노숙농성이 이어지고 있다. 평범한 우리의 이웃인 이들이 거리의 투사로 나선 것은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장애아동들에 대한 정부의 무관심과 몰이해의 벽이 너무나 높기 때문이다.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건 없건 장애아동을 둔 부모들의 처지는 딱하고 절박하다. 장애아동에게는 사실상 24시간 곁에서 지킬 수 있는 돌보미가 필요한데 정부가 지원하는 장애아동 돌봄 서비스의 혜택을 보는 가정은 전체 9만 가구 가운데 2500가구에 불과하다. 그래서 대부분 가정에서는 부모 중 한 사람이 장애아동에 전적으로 매달릴 수밖에 없다. 이들 중에는 장애아동의 조기 교육과 재활치료에만 매달 150만∼200만원 안팎의 비용을 지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하지만 정부가 바우처 형태로 지원하는 재활치료비는 월 16만∼22만원이 고작이다. 그마저도 3만7000명 정도만 혜택을 본다. 경제적 부담에 육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까지 겹치면서 가정이 파탄 나고 해체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장애아동 가정의 이혼율은 다른 가정에 비해 7배가량 높다고 한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여있는 장애아동과 그 가족을 위한 체계적인 지원책을 마련하기 위해 지난해 11월 한나라당 윤석용 의원의 발의로 국회에 제출된 법률이 ‘장애아동복지지원법’이다. 여야 121명의 의원이 제정안에 서명했다. 장애아동 부모들은 4월에는 법안 처리가 가능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복지부는 유관기관과 충분한 협의가 이뤄지지 못했다는 이유로 반대의견을 냈다. 하지만 실제 반대 이유는 이 법을 제정할 경우 소요될 추가 예산 부담 때문이었다고 한다. 달리 말하면 장애아동 복지가 다른 사업에 비해 우선순위에서 밀려나 있다는 뜻이다. 만약 그 이유가 장애아동 복지를 특수한 계층이나 집단의 문제로 보기 때문이라면 이는 잘못돼도 한참 잘못된 것이다.
가정을 꾸리면 원하든 원치 않든 누구나 장애아동의 부모가 될 수 있다. 장애아동은 물론 장애아동의 가족도 헌법이 보장한 기본권을 누릴 자격이 있다. 헌법 제34조는 ‘모든 국민은 인간다운 생활을 할 권리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있다. 헌법 정신에 비춰보면 장애아동 지원은 복지에 앞선 기본권의 문제인 셈이다. 동시에 장애아동 지원은 긴급구호의 성격도 갖는다. 장애아동을 둔 가정들은 지금도 쉼 없이 ‘SOS’ 신호를 내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여기에 ‘복지 포퓰리즘’이나 ‘망국적 복지병’ 운운하는 시비가 개입할 여지는 없다. 기본권 보장과 긴급구호의 대상이므로 다른 사업과 우선순위를 재량해서도 안 된다. 선량한 우리의 이웃들이 더 이상 거리로 나서지 않도록 정부가 이들의 절박한 목소리에 진심으로 귀를 기울였으면 좋겠다. 이들은 호소한다. 정부가 4대강 사업에 쏟는 관심과 열정의 10분의 1만이라도 장애아동들에게 보여 달라고.
송세영 사회부 차장 sysho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