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선 약사의 미아리 서신] 준영이네 집 ‘그 후’
입력 2011-04-20 18:10
따스한 햇살로 두꺼운 겨울옷을 벗게 하는 봄의 전령이 집 안마당까지 들어와 있네요. 다들 봄맞이를 어떻게 하고 계신지요.
무거운 겨울옷을 잘 갈무리하여 옷장 깊숙한 곳에 넣고 다홍색과 분홍색이 화사한 봄, 여름옷을 꺼내 겨우내 켜켜 앉은 먼지를 떨어내고 바람과 햇볕 속에 내어 서로 어울리게 하였답니다. 제 기분까지 뽀송뽀송하게 마르는 기분이었지요. 올망졸망 모여 있는 화분들도 정리하였습니다. 묵은 때가 가득한 화분을 말끔히 닦고 흙도 북돋아주고 이끼도 더 덮어주고 하여 봄단장을 예쁘게 시켜주었습니다. 나무와 꽃이 생글생글 웃어주니 바라보는 저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졌지요. 내 눈이 닿은 곳을 곱게 꾸미고 싶은 마음은 사람이라면 누구나 갖는 마음이겠지요.
준영이네 집(3월 31일자 ‘이웃’ 33면 참조) 작은 마당도 그렇게 작은 화분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비록 앞 집 축대와 연결해서 만든 채 한 평이 안 되는 시멘트 마당이지만 그 작은 모퉁이 공간에도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봄의 햇살은 가득했습니다. 준영이 엄마가 퇴근길에 하나씩 사서 모은 작은 화분이 오십개 남짓하였습니다.
“언니 이 아이들 참 예쁘죠. 하나에 천원이야. 정말 싸지요.”
천원짜리 작은 화분을 사들고 지하철을 타고, 마을버스를 타고 걸어서 서울 후암동 산꼭대기를 오르는 내내 행복해 했을 준영이 엄마의 얼굴이 눈에 선하였습니다. 바람이 훅 불면 날아갈 것 같은 얇은 플라스틱 화분에 자신을 걸고 버티고 있는 초록아이들이 참으로 당당해 보였습니다. 비탈길에 자리한 열평 남짓한 양철지붕 아래서 서로 기대어 사는 초록아이들과 닮은 준영이와 재형이와 경호가 있었습니다. 열일곱 살 청춘들입니다.
지난달 말 국민일보에 아이들의 이야기가 활자로 찍혀 나왔습니다.
많은 독자가 제게 전화를 주셨습니다. 아이들을 생각하면 가슴이 메어 지신다시면서 전화선 너머로 들려오는 어느 장로님의 울먹이는 목소리에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감동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또 적은 액수가 부끄럽다면서 쑥스러워하는 노(老) 권사님의 가득한 음성에는 하나님 아버지께서 주시는 사랑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분들이 그 아이들에게 기도와 사랑을 보내주셨습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보내주신 사랑과 기도를 준영 엄마와 아이들을 만나 잘 전해주었습니다.
처음에는 쑥스러워 고개를 들지 못하던 경호의 얼굴에 미소가 어리기까지는 조금 시간이 걸렸습니다. 자신을 버리다시피 한 어머니와 아버지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굳어지는 경호의 얼굴을 보면서 그 아이에게 많이 미안했습니다.
한때 가족 모두가 교회를 열심히 다녔다는 경호의 이야기는 참으로 아픔이었습니다. 그래서 자기는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이야기하는 그 여린 아이는 설움에 어깨가 들썩였고 바라보는 준영이 엄마와 저는 눈을 붉힐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런 자기인데 어떻게 얼굴도 모르는 분들에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느냐고…그럴 자격이 되는지 모르겠다고 이야기하는 경호를 따스하게 안아주었습니다. 끼니를 제대로 잊지 못하는 경호는 뼈가 앙상할 정도로 말라 있었습니다.
“경호야. 우리에게 자격은 의미가 없어. 어느 누가 감히 하나님 아버지의 자녀가 되는 자격을 가지고 있겠어. 누구도 없을 거야.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감사해 하고 열심히 자녀 된 삶을 살아가면 되는 거란다.”
지금 당장은 힘들겠지만 부모님을 너무 미워하지 말라고 부탁하였습니다. 맛있는 통닭을 먹으면서 아이들과 수다를 떨었습니다. 옆 반 선생님 흉도 보고, 연예인 이야기도 하고 십대 아이들이 그리 하듯 그렇게 이야기를 오래 나누었습니다. 밝게 웃는 경호의 웃음이 오래갔으면 좋겠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이 아이들과의 인연 길을 어떤 이유로 열게 하셨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아이들을 참으로 사랑하고 계셨던 것이지요. 경호는 불규칙한 식사와 스트레스로 인해 체력이 많이 떨어져 있습니다. 오래된 기침으로 힘들어하는 경호를 병원 치료도 받게 하고 또 아침도 먹게 하고자 합니다. 많은 기도 부탁드립니다.
이미선 약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