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판으로 본 기독교 100년] 탕자 이야기 순한글 세로쓰기 간행

입력 2011-04-20 18:08


‘랑자회개’는 누가복음 15장에 나오는 이른바 ‘탕자의 비유’ 이야기를 해설한 전도 책자인데 순한글 세로쓰기로 되어 있다. ‘탕자’ 이야기는 마치 잘 짜여진 한 편의 드라마 같다.

어떤 사람이 아들 둘을 데리고 있었다. 작은 아들은 재산을 미리 분배받고 집을 나가 방탕한 생활을 하다가 재산을 모두 허비한다. 결국 돼지치기로 삶을 영위하나 흉년이 들어 굶주림에 지쳐 집으로 돌아온다. 그는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아들이 아니라 날품팔이꾼으로라도 삼아 달라고 간청하려 했지만, 오히려 아버지는 송아지를 잡아 잔치를 벌이며 환대한다. 그러나 맏아들은 화가 나서 잔치에 가지 않는다. 이때 아버지가 맏아들에게 다가가 이렇게 달랜다. ‘네 아우는 죽었다가 살아났고 내가 잃었다가 되찾았으니 이 기쁜 날을 어떻게 즐기지 않을 수 있느냐?’

이 이야기에서 아버지와 아들은 하나님과 우리 인간을 나타내는데 저자는 “세상 사람이 하나님 아버지를 대함이 방탕한 자식이 그 부친에게 하는 것과 같다”며 세상사람 중에 하나님에게 죄 아니 지은 자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항상 아버지 마음을 품으셔서 기꺼이 죄를 사해 주신다. 맏아들은 아우를 파격적으로 환영하는 아버지에게 대놓고 항의한다. 저자는 이러한 맏아들의 행태를 ‘저희끼리 조금만 틀려도 반드시 화를 품어 서로 용서하여 주지 않는’ 우리 인간의 속성으로 파악하고 “사람이 사람에게 죄짓는 것은 작은 일이지만,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은 그것에 몇 만 배나 더한 일”이라고 주장한다.

결론으로 “뉘우치며 하나님께 돌아가 의지하기를 바라면 무궁한 복을 누릴 것”이라고 하며 하나님의 사랑을 강조한다. 이 책자는 지은이가 미상이고 이수정이 일본에서 한국어로 번역 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수정은 온건개혁파들과 교제를 나누던 양반 학자였는데 임오군란 때 명성황후를 구출한 공으로 선략(宣略)장군직을 하사받았다고 한다. 1882년 고종의 배려에 의해 수신사 박영효의 비공식 수행원 자격으로 일본에 가게 되었다. 이때 일본인 농학자 쓰다센을 만나 기독교를 받아들였고 선교사 루미스의 요청에 따라 한문 성경을 우리글로 옮기는 작업을 하게 되었다. 처음에는 한문에 토를 다는 작업을 하여 ‘신약성서 마태전’ 등을 내놓았다. 그리고 본격적인 한글 번역 작업에 들어가 1884년 4월 ‘신약 마가젼복음셔 언해’를 완성하였다. 이 책은 한문을 언문(諺文) 곧 한글로 풀이한 언해본 성경으로, 국한문 혼용으로 되어 있다. 간행은 이듬해 2월 일본 요코하마 주재 미국 성서공회를 통해 이루어졌다.

이때는 선교사들이 아직 파견되기 전이어서, 최초의 선교사인 언더우드와 아펜젤러는 이 ‘마가복음’ 성경을 들고 한국에 입국할 수 있었다. 이것은 세계 기독교 선교 역사에 유례가 없는 일로 전도 활동에서 커다란 효과를 발휘하였다.

그 전에 이수정은 미국 교회에 편지를 보내 선교사 파송을 요청하여 성사시켰고 선교사들이 한국에 가기 전 일본에 머무르고 있을 때 한국어를 가르쳤다. 이수정은 일본의 교회와 기독교 지도자들 모임에서 특강하여 감동과 놀라움을 줌으로써 일본 사회에 큰 영향을 끼쳤다. 특히 일본의 대표적인 성서학자였던 우치무라 간조는 한 기독교 집회에서 이수정의 기도를 듣고 전체 회중이 “무엇인가 기적적이고 엄청난 게 임하는 오순절의 영감을 느끼게 되었다”고 자서전에서 술회한 바 있다. 또한 이수정은 서재필 등 한국인 유학생에게 성경을 가르치며 최초로 주일학교를 개설하였다. 오늘날 이수정은 한국 선교의 터전을 마련한 인물로 평가받고 있다.

부길만 교수(동원대 광고편집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