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 위기, 교회 훈련으로 극복했어요

입력 2011-04-20 00:10


깍두기를 담가도 모양이 예쁜 정사각형만 골라 아들을 주었다. 고등학교 3년 내내 대학생 누나가 학교 문 앞까지 책가방을 들어다주었다. 예전 인기 드라마 ‘아들과 딸’의 귀남이와 판박이다. 손이 귀한 집 외아들 최경호(53·모기업 부사장) 집사 얘기다.

18일 경기도 성남시 정자동에서 최 집사와 아내 한선진(52) 권사를 만났다. 해맑게 웃으며 인사하는 최 집사는 고생이라고는 전혀 모르고 산 얼굴이었다. 한 권사는 기자의 방문에 깜짝 놀란 표정이었다. “남편이 인터뷰하자고 하면 제가 거부할까봐 말을 하지 않은 것 같아요.”

순간 ‘진짜 행복하지 않았던 가정사’를 어떻게 물어보나 걱정스러웠다. 두 사람은 대학 1학년 때 만나 5년간 연애 끝에 결혼했다고 한다. 올해로 결혼한 지 29주년이 됐다.

한 권사는 모태신앙인으로 외할아버지가 목사여서 가족이 모이면 예배드리는 게 당연한 분위기에서 자랐다. 최 집사는 가톨릭 신자였지만 어머니는 신심 많은 불교신자였다. 처음 한 권사 부모를 만난 날 교회에 나갔으면 좋겠다는 권면에 따라 교회에서 세례받고 크리스천이 됐다. 외아들이 하겠다는 일을 시어머니도 막지 못했다.

결혼 당시 학생이어서 경제적 능력이 없는 최 집사 부부는 부모와 함께 살았다. 혈혈단신 월남한 시아버지는 가족을 최우선으로 생각했고 자매만 다섯이었던 시어머니는 외아들인 최 집사를 극진하게 보살폈다. 그러나 결혼 후에도 이런 아들 중심의 생활은 계속 되었고 며느리에게 아들을 뺏겼다고 생각했던 시어머니의 시집살이가 시작됐다. 세탁기도 못 쓰게 하고 밥도 부엌에서 따로 먹으라고 했다. 교회 출석은 꿈도 못 꿨다.

“남들도 다 그렇게 사는 줄 알았어요. 효심 깊은 남편은 어머니 편만 들었어요. 마음이 아팠습니다.”

한 권사의 말이다. 그러던 차에 분가를 하게 됐고 서울 서초동 사랑의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게 됐다. 제자훈련을 받으면서도 시어머니에 대해 마음을 여는 일은 쉽지 않았다. 한 권사의 눈에서 주르르 눈물이 흘렀다. 제자훈련 후 만난 멘티와 대화를 나누며 시어머니를 차츰 이해하게 됐다. 시간이 지나자 그많던 미움은 어느새 사라지고 그제야 시어머니께 잘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부모님과 다시 합치고 나니 다 이해할 것만 같았던 문제들이 다시 살아났고 고부간의 갈등은 이전보다 더 깊어졌다. 자라난 두 딸도 ‘할머니가 이상하다’고 했다. 하지만 최 집사는 모든 잘못을 아내와 딸들에게 돌렸다. 고부간의 갈등은 가족 모두의 문제가 돼버렸다.

“아이들도 ‘엄마, 우리는 가족이 아닌가봐’라고 말할 정도였어요.”

그런 중에 부부는 교회에서 예수님의 삶 속에서 부부의 삶을 반추해보는 ‘사랑의 순례’ 프로그램에 참여하고 결혼준비교실의 멘토로 섬기면서 결혼생활에 대해, 그리고 서로에 대해 조금씩 이해하게 됐다. 한 권사의 남편에 대한 기대와 헌신에도 아랑곳없이 변할 것 같지 않던 최 집사는 아내와의 진솔한 대화를 통해 차츰 변하기 시작했다.

최 집사는 이때 처음으로 아내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는지 알게 됐다. 교회에서 훈련 받으며 자신도 서서히 변화하고 있었지만 정작 아내의 어려움은 몰랐다고 말했다. 그는 신앙생활을 하면서 세 번의 터닝포인트가 있었다고 고백했다.

“첫 번째는 제자훈련을 받으며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게 됐고 두번째는 전도폭발 훈련을 받으면서 하나님의 은혜로 자신의 신분이 변화된 것을 알게 됐습니다. 세번째는 가정사역을 통해 섬기고 훈련을 받으면서 행복한 믿음의 가정에 대해 생각하게 됐죠. 성격, 성장배경, 종교도 다른 환경에서 자란 아내에 대해 내가 너무 몰랐다는 것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아내가 느꼈을 소외감 대신에 행복을 채워주기 위해 매일매일 노력합니다.”

최 집사는 이 과정을 통해 자신을 연단하신 하나님을 알고 감사하는 사람으로 바뀌었다. 한 권사 역시 그런 남편을 보며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했다. 한 권사는 “결혼준비교실에 온 사람들을 보면 그렇게 부러울 수가 없다”며 “모르고 결혼하는 것과 미리 알고 결혼하는 것은 평생의 행복을 좌우할 만큼 중요한 문제”라고 강조했다.

성남=최영경 기자 yk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