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최찬영 (14) 태국 성서공회 총무 제안받고 깊은 고민
입력 2011-04-20 17:31
시간에 맞춰 약속 장소에 나가니 키가 크고 머리가 시원하게 벗겨진 한 미국인이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라톤 홈그렌 미국 성서공회연합회 총무였다. 그는 자신의 일과 성서공회가 세계적으로 어떤 일을 하고 있는지 장황하게 설명했다. 한 시간 이상 서론을 끝내고 드디어 본론을 말했다.
“지금까지 태국 성서공회 총무는 미국인이었습니다. 그래서 태국인들 중 총무를 뽑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해 여러모로 알아보았는데 마땅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태국에 있는 아시아 선교사들 가운데 한 명을 택하는 게 좋겠다고 결정했죠. 혹시 추천할 만한 분이 있으신가요?”
“네, 제가 알기로 일본과 필리핀에서 온 선교사 두 분이 있는데요. 고야마 선교사는 프린스턴신학교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신학교수입니다. 솔리스 선교사는 커뮤니케이션을 전공한 매우 유능한 필리핀인입니다.”
그는 나를 바라보며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잠시 침묵하더니 말을 이어갔다.
“두 분 선교사님은 이미 만나 보았습니다. 제 생각에 그분들은 지금 하시는 일이 더 잘 어울릴 것 같습니다.”
그리고 다시 침묵이 흘렀다.
“제 생각에는 최 선교사님이 가장 적합할 것 같은데요. 두 분 모두 최 선교사님을 추천하셨습니다.”
전혀 예기치 못했던 이야기였다. 그때까지 나는 문서 선교에 대한 이해가 전혀 없었다.
“아닙니다. 저는 태국에 전도하러 간 것이지 사무실에 앉아 사무를 보기 위해 간 것이 아닙니다. 앉아서 편지 쓰고 서류 정리하는 일에는 전혀 관심 없습니다. 저는 전도 현장이 좋습니다.”
나의 얘기를 묵묵히 듣던 그는 가벼운 미소를 짓더니 정중하게 다음 말을 이어갔다.
“사실 오늘 최 선교사님께서 총무 직을 맡겠다고 선뜻 나섰다면 좀 실망했을지도 모릅니다. 잘 아시는 것처럼 쉽게 결정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니까요.”
사교적이고 노련한 홈그렌 총무 앞에서 나는 순진한 아이처럼 느껴졌다. 그는 다시 말을 건넸다.
“하나님 앞에서 기도해보시지 않겠습니까? 또 최 선교사님은 결혼하신 분이니 집에 돌아가 사모님하고 서로 의논해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도면밀하고 생각이 깊은 사람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일이 있고 한 달 반 정도 지난 뒤 당시 총회 선교부장이셨던 한경직 목사님으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다.
“최찬영 선교사님께 주님의 은총이 늘 함께하시기를 빕니다. 저희 선교부에 성서공회로부터 부탁이 들어왔습니다. 다름 아니라 최 선교사님께서 태국 성서공회 총무로 일해 주었으면 하는 청원입니다. 저희도 이 일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았습니다. 직접 전도하는 일도 중요하지만 문서 선교도 선교지에서 필요하니 세계적인 선교기관과 유대를 갖고 일하는 것이 좋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내가 별로 관심을 갖지 않자 성서공회 담당자가 한국에까지 연락을 해 선교부장이신 한 목사님께서 직접 편지를 보내신 것이었다. 아내도 기도 가운데 내가 성서공회의 일을 맡으면 잘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고 의견을 내놓았다.
‘한국교회도, 집사람도 그렇게 생각한다면 하나님께서 새로운 사역으로 나를 부르시는 것이 아닐까?’
나는 성서공회 뉴욕 사무실을 방문했다. 그들은 나를 따뜻하게 맞아주었다. 뉴욕에서 한 달 정도 오리엔테이션을 받았다. 성서공회 사역은 대단했다. 처음 성서공회 일을 시작할 때는 서류나 보는 사무적 일이라 여겼는데 일에 깊숙이 관여하다보니 매우 귀한 선교사역임을 깨닫게 됐다.
정리=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