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국적법에 따라 한국국적 얻은 김대원 해외입양인연대 이사… 해외 입양인, 한국국적 회복운동 결실 맺다

입력 2011-04-19 21:16

“해외 입양인은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싶어 한 게 아닙니다. 자동 이탈됐던 겁니다. 지금이라도 바로 잡혀 다행입니다.”

19일 한국 국적을 회복해 이중국적을 갖게 된 김대원(43) 해외입양인연대 이사는 입양인에게는 당연히 복수국적을 허용해야 한다며 이렇게 말했다. 법무부는 새 국적법에 따라 이날 처음으로 김씨 등 13명에 대해 한국 국적을 회복시키고 축하하는 행사를 가졌다.

우리나라는 이중국적을 허용하지 않았지만 올 1월 1일부터 시행된 개정 국적법은 우수인재 등 일정 요건을 갖춘 외국인이 한국 국적을 취득할 때 외국 국적을 포기하지 않아도 한국 내에서 그 국적을 행사하지 않겠다는 서약만 하면 예외적으로 이중국적을 허용하고 있다.

김씨는 한국에서 태어났지만 한국인으로 살지 못했다. 다섯 살이던 1972년 그는 스위스의 한 가정에 입양됐다. 그곳 생활은 평탄하지 못했다. 양부모가 경제적으로 어려워 힘든 청소년기를 보내야 했고, 대학 진학의 꿈도 접을 수밖에 없었다. 동양인에게 쏟아지는 차별도 견뎌야 했다.

“일자리를 얻으려고 다른 친구보다 곱절은 더 많이 이력서를 냈습니다. 스위스는 이력서에 사진을 붙이지 않아 면접까지는 올라갔는데 얼굴을 보곤 면접관들이 거부반응을 보이곤 했죠.”

이런 차별 속에도 김씨는 낙담하지 않았다. 스위스 사회에 적응하기 위해 군에 입대해 탈 없이 병역을 마쳤고, 스스로 학비를 벌어 취리히 대학에도 입학했다. 덕분에 지금은 5개 국어에 능통한 인재가 됐다.

그가 고국으로 돌아오기로 마음먹은 것은 2003년 여름이었다. 휴가 차 찾은 한국에서 두 달간 머물면서 자신이 태어난 곳에서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그는 1990년과 94년에도 한국을 찾았고, 94년 방문 때는 친어머니와 상봉했다. 이후에도 한국을 못 잊어 휴가 때 찾았고, 아예 눌러 살기로 결심했다.

김씨는 휴가를 끝내고 스위스에 돌아가 20㎏짜리 짐 가방 하나만 달랑 싸들고 귀국했다. 양부모가 만류했지만 그의 발길을 돌리진 못했다. 한국에 정착한 김씨는 자신과 같이 키워준 양부모와의 정으로 입양된 국적은 못 버리지만 한국 국적은 회복하고 싶은 입양인들을 위해 해외입양인연대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2007년부터는 한국과 외국의 국적법을 연구하며 외국국적을 포기하지 않으면서도 국적을 회복할 방법을 찾아 나섰다. 전 세계 해외 입양인을 대상으로 복수국적 허용을 요구하는 서명운동도 벌이고 법무부를 찾아가 이중국적을 허용해달라는 의견서도 제출했다.

4년 만에 김씨는 바라던 한국 국적을 얻게 됐다. 그는 “한국인이라는 정체성은 있지만 법적으로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 사람이라고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됐다”며 “앞으로 한국과 스위스를 연결하는 다리 역할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노석조 기자 stonebird@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