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사들 부려먹는 한국검정교과서… 수익 다 챙기고 ‘교과서 수만여권 배분’ 뒤치다꺼리 동원

입력 2011-04-20 00:54

서울 동덕여고 교과서 담당교사 이숙희(여)씨는 최근 한국검정교과서 직원들의 리베이트 비리 보도를 보고 울화통이 터졌다. 사서교사로 20년 넘게 교과서를 학생들에게 배분하는 업무를 했는데 정작 교과서 배분을 책임져야 할 ‘생산자’인 한국검정교과서 측은 비리를 저지른 것이다.

이씨는 19일 “교사들은 체육시간을 이용해 학생들과 교과서를 배분하거나 친척·친구까지 동원한다”며 “검정교과서는 수익을 그렇게 가로채면서 교과서 배분에 교사를 종처럼 부린 셈”이라고 비난했다.

한국검정교과서 직원들이 교과서 비용을 부풀려 룸살롱 비용 등으로 탕진해 비난이 고조되는 가운데 교과서 분배를 맡아온 교사들의 불만이 터져 나오고 있다. 교과서 출판·배분 수익은 한국검정교과서와 공급업체가 챙기면서 뒤치다꺼리는 교사가 해 왔다는 불만이다.

한국검정교과서와 일선 교과서 담당교사 등에 따르면 교과서 분배는 한국검정교과서와 계약을 맺은 공급업체가 담당한다. 문제는 한국검정교과서와 공급업체가 책임져야 할 교과서 분배에 교사들이 동원된다는 점이다.

공급업체가 학교에 수만권의 교과서를 한번에 배달하면 교사들이 포장을 뜯고 종류에 따라 분배하는 것이다. 학교당 한 명씩 있는 교과서 담당교사는 수업도 제대로 준비하지 못하면서 2주 동안 전교생의 교과서를 정리·분배하는 일을 한다.

한 교과서 담당교사는 “학교로 배달된 검정교과서만 3만권에 이른다”며 “41개 학급의 교과서를 배분하는데 학기 초마다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고 있다”고 토로했다. 다른 학교의 교과서 담당교사는 “교육과 전혀 상관없는 일에 교사가 매달려야 하는 현실은 말이 안 된다”고 했다. 교사뿐 아니라 학교 행정실 공무원도 검정교과서 분배에 동원된다.

공급업자들은 이렇게 교사와 공무원들을 분배 업무에 동원한 것에 대해 일부 비용을 관행적으로 지급해 왔다. 교과서 권당 17원 정도의 실비 수준이다. 그러나 일부 국정 교과서 공급업체는 이 같은 실비마저 지급하지 않았다.

한국검정교과서 측도 이 같은 공급 방식에 문제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 그러나 학생들에게 제때 교과서를 지급하기 위해서는 교사들의 협조가 불가피하다고 설명했다. 한국검정교과서 관계자는 “현재 공급제도로는 학교장이 지정한 장소까지만 배달한다. 학생에게 일일이 배달할 경우 시간적, 금전적 소요가 크다”면서도 “교육과학기술부와 공급 방식 개선을 논의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김동석 대변인은 “학교 담당교사에게 분배 경비금 명목으로 10만∼40여만원을 주는 데도 있지만 분배에 들어가는 아르바이트생 고용 등 실질 비용을 충당하기에도 모자라다”며 “전근대적인 교과서 분배 방식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성수 임세정 기자 joyls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