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전산망 구멍] 신속대응 가로막은 농협 조직문화·지배구조… 고질적 관료주의로 ‘땜질’ 급급
입력 2011-04-19 22:41
이번 전산망 장애 사태가 1주일 넘게 지속되면서 해결이 더딘 데에는 내부 조직의 안일함과 관료적 문화가 한몫했다는 지적이다. 농협 조직이 정치적 풍향에 흔들리는 경우가 많고 전문 분야에 대한 이해도가 타 금융권보다 떨어져 신속한 위기대응 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농협은 농·축산민을 조합원으로 한 거대조직으로 장기간 성장하면서 자연스럽게 관료주의를 체득해 왔다. 수차례 브리핑에서도 관료적이고 배타적인 조직문화는 드러났다. 복구시일을 즉흥적으로 번복했으며 원장 훼손 여부에 대한 거짓말도 이어졌다.
이런 문화 속에서 농협의 금융사고는 도를 넘는 수준으로 발전했다. 농협이 지난해 제출한 국정감사 자료를 보면 2008∼2010년 총 41건의 금융사고가 발생했다. 사고 금액은 모두 101억4900만원이다. 내부 직원의 횡령 건수는 이 중 44%인 18건으로 액수는 89억8700만원에 달했다. 이러한 안일함 때문에 과거 1∼3대 농협 회장은 줄줄이 철창신세를 지기도 했다.
농협 지배구조 자체의 문제라는 얘기도 나온다. 회장을 포함한 7명의 임원이 선거를 통한 선출직이다 보니 정치 바람을 많이 타고 로비나 외부 동향에 민감한 구조라는 것이다. 자연 단기 성과에만 관심을 둘 뿐 경영혁신이나 합리적 조직 운영은 등한시할 가능성이 높다는 분석이다.
농협은 최원병 회장 아래 전무이사 1명과 사업부문 대표이사 3명이 있다. 문제는 이들 이사직은 농협 조합의 대표 격인 대의원들이 선출한 상임직으로 예산 및 인사권을 쥐고 있지만 정작 회장은 지난 2008년 개정법에 따라 권한이 집중되는 것을 막기 위해 비상임직으로 바뀌면서 실질 권한이 줄었다는 점이다. 이 같은 조직상 구조 때문에 위기대응 능력이나 신속한 보고체계를 갖추기 힘들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실제 이번 전산장애 사태에서 실무진이 회장에게 즉각 보고하지 않고 조직에 무한책임을 져야 할 회장이 “나도 몰랐다”는 말을 내뱉는 등 ‘모래알 조직’의 전형을 보여줬다.
은행권 관계자는 “일반 시중은행과 달리 농협은 조합원들이 뽑는 선출직 임원들로 이뤄져 있기 때문에 각 분야 이사들이 내부적인 업무보다는 정치적인 권력행사를 더욱 중시했을 것”이라며 “이러한 문제점 때문에 이번 사건에서 담당 부서가 회장에 즉시 보고를 하지 않는 상황이 연출됐고 사태가 커졌다고 본다”고 말했다.
김아진 기자 ahjin82@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