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적장애인 사업장 ‘애덕의 집’ 가보니… ‘정직한 웰빙 빵’ 희망 향기 모락모락
입력 2011-04-19 22:30
19일 오전 9시 경기도 고양 애덕의 집 ‘소울 베이커리(soul bakery)’ 주방에선 빵 굽는 구수한 냄새가 풍겨 나왔다. 첫 빵이 나오는 오전 10시, 빵이 구워지는 동안 위생모와 앞치마를 두른 32명의 지적장애인들은 오븐에 들어갈 다음 반죽을 준비하고 포장작업을 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갑자기 쿠키를 포장하던 자폐성장애1급 서병덕(25)씨가 큰 소리로 김혜정(44·여) 원장을 불렀다. 한글을 읽지 못하는 동료의 실수로 쑥쿠키가 들어가야 할 통에 버터쿠키가 들어가는 ‘불량’이 생겼기 때문이다. 자폐성장애와 과잉행동장애가 있는 서씨는 의사소통이 원활하지 못해도 작업자 중 읽기 능력이 가장 좋아 포장 작업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다. 김 원장은 “병덕씨는 빵에 크림이 조금이라도 묻거나 포장지와 내용물이 바뀐 것을 절대 용납하지 않는 완벽주의자”라며 “일하면서 스스로의 장점을 찾은 케이스”라고 말했다.
빵틀 24개에 머핀 반죽을 담고 있는 지적장애 2급 오경희(23·여)씨의 손길은 남달랐다. 눈대중으로 빠르게 작업하는 대신 빵틀에 반죽을 담을 때마다 정확히 110g이 맞는지 일일이 저울에 달아볼 정도로 꼼꼼했다. 더딘 손길로 반죽을 컵에 넣은 뒤 계량하기를 모두 24차례, 그제야 오씨의 표정에 만족스러움이 묻어 나왔다.
일반 빵집에 비해 작업효율은 떨어지지만 재료 분량과 비율만큼은 정확하게 지켜 ‘정직한 빵’을 만드는 소울 베이커리는 1997년 애덕의 집 조그만 주방에서 탄생했다. 장애인의 간식을 직접 만들어 먹자는 취지였다. 하지만 간식으로 만든 쿠키를 먹어본 후원자들의 요청으로 2004년부터 상표를 등록해 주문 판매를 시작했다. ‘소울’은 ‘영혼 살찌우는 먹을거리 만들라’는 뜻에서 수녀들이 지어준 이름이다.
국산 밀과 유정란을 사용하는 소울 베이커리의 빵들은 웰빙 제품을 선호하는 어린이집이나 시민단체의 입소문을 타고 이제는 월 매출 8000만원을 기록할 정도로 인기가 좋다. 덕분에 가족의 생계를 책임지거나 부모를 보험에 가입시킨 장애인도 나왔다.
6년 전 설거지부터 시작해 지금은 소울 베이커리에서 ‘반죽의 달인’으로 불리는 지적장애2급 이광미(27·여)씨는 지병으로 거동이 불편한 부모를 위해 생계를 책임지는 든든한 딸이다. 이씨는 “아버지가 ‘내 딸이 빵 만든다. 이 빵은 다른 빵과 다르다. 몸에 좋은 빵이다’라고 친구에게 자랑할 때가 가장 기쁘다”며 크게 웃었다. 오븐을 맡고 있는 지적장애3급 박철순(22)씨 역시 “내가 돈을 벌어 부모님을 보험에 가입시켜드렸다”며 “남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는 것을 빵을 구우며 처음 알게 됐다”고 뿌듯해했다.
김 원장은 “간단한 의사소통조차 힘들었던 장애인들이 사회에서 역할을 찾고, 자기 존재감까지 생겼을 때가 가장 행복하다”며 “장애인은 육체노동을 할 수 없다는 선입관을 버리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김수현 기자 siempre@kmib.co.kr 고양=유동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