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에서 적으로… 애플-삼성 ‘특허소송’ 전쟁 돌입
입력 2011-04-19 21:15
삼성전자와 애플 사이에 소송전이 펼쳐질 전망이다. 스마트폰과 태블릿PC에서는 경쟁, 부품 공급에서는 협력관계였던 ‘불안한 동거’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19일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에 따르면 애플은 지난 15일 삼성전자를 상대로 미국 캘리포니아 북부 지방법원에 소송을 제기했다. 상표권과 특허권 침해 등 모두 16건의 침해 사례가 언급된 것으로 알려졌지만 핵심은 삼성전자의 갤럭시S와 갤럭시탭 등이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카피(복사)’했다는 것이다. 애플은 소장에서 “삼성이 독자적인 제품 개발을 추구하는 대신 애플의 혁신적인 기술과 사용자환경(UI), 심지어 포장까지 맹목적인 베끼기를 선택했다”며 “이는 애플의 귀중한 지적재산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삼성전자가 모방했다는 부분은 직사각형 외관에 둥근 모서리와 은빛 테두리, 모서리가 둥근 직사각형의 아이콘 디자인 등이다.
애플의 소송은 우선 시점 면에서 삼성전자를 견제하려는 의도가 읽힌다. 삼성전자는 다음 주 갤럭시S 2를 출시한다. 반면 애플의 아이폰 5는 일본 대지진에 따른 부품 공급 차질로 하반기나 돼야 시장에 모습을 드러낼 것이라는 관측이 많다. 업계 관계자는 “이번 소송으로 소비자들에게 삼성의 제품은 아이폰을 베낀 것이라는 이미지를 심어주고 아이폰 5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라는 메시지를 주려고 한 것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애플 최고경영자(CEO) 스티브 잡스가 지난 3월 아이패드 2 발표 행사에서 삼성전자의 갤럭시탭을 비롯한 타사의 제품을 ‘카피캣(Copycat·모방꾼)’이라고 비하한 것의 연장선이라는 의미다.
애플은 지난해 스마트폰 제조업체인 HTC와 모토로라를 상대로 특허 소송을 제기했고, 지난달에는 ‘앱스토어’ 이름을 무단으로 사용했다며 아마존을 고소하기도 했다. 애플은 일련의 소송에서 스마트 혁명을 이끈 1등 제품의 이미지를 심어주려는 전략적인 판단을 하고 있다는 분석이 많다. 또한 최근 반도체 가격 상승 등에 따라 애플이 삼성전자 부품 구매에서 협상력을 높이기 위한 수단으로 제소를 선택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애플은 지난해 삼성전자로부터 6조1600억원의 부품을 구매해 삼성전자의 2대 고객사로 부상했다.
그렇다고 이번 소송이 제대로 한판 붙어보자는 의미는 아닌 것 같다. 삼성 제품에 대한 판매금지 가처분 신청을 하지도 않았고,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가 아닌 지방법원에 제소했다. 애플이 소송에서 승리를 장담하기도 힘들다. 파이낸셜타임스는 “이번 소송은 복잡한 특허 관련 소송이 아니라 상식에 기반한 것으로 보인다”며 “소비자들이 양쪽 제품을 놓고 제조사를 분간하기 힘들다고 판단돼야 애플이 소송에서 이길 수 있다”고 분석했다.
그동안 삼성전자 측은 애플의 시비에 주요 거래선이라는 이유로 말을 아꼈다. 하지만 이번에는 다르다. 삼성전자는 “애플은 삼성전자의 최대 고객이지만 먼저 제소를 해왔기 때문에 법적 대응이 불가피하다”고 공식 입장을 밝혔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애플이 WCDMA(광대역 부호분할 다중접속) 등 통신표준 영역에서 삼성의 특허를 침해한 사례는 셀 수 없다”고 주장했다.
맹경환 기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