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육수업은 여선생님, 순찰은 교장선생님
입력 2011-04-19 21:47
남교사 없는 서울 금옥초교 가보니
“선생님, 물구나무서기를 못하겠어요.”
지난 15일 서울 금호동 금옥초등학교 실내체육관. 초등학교 6학년 남학생들이 물구나무서기를 못하겠다며 엄살을 부리자 웨이브 머리를 질끈 묶은 젊은 여교사가 손수 물구나무 서는 방법을 가르치고 있었다. “1, 2, 3, 4, 5, 됐습니다.” 학생들이 5초를 버티자 이 교사는 학생의 발이 땅에 닿도록 도와준다.
이 학급 담임 곽은수(26·여) 교사는 체육수업을 하러 온 6학년 3반 학생 25명을 6명씩 네 줄로 세우고 직접 체육 수업을 진행했다. 금옥초등학교에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남자교사가 있어서 5∼6학년의 체육 수업은 남자교사가 담당했다.
하지만 올해 초 한 명뿐이던 남자교사가 다른 학교로 전근을 가자 교장·교감을 제외하고는 여교사만 남았다. 체육수업도 당연히 여교사의 몫이 됐다.
여교사가 진행하는 체육수업 분위기는 시종일관 부드러웠다. 곽 교사가 “짝체조 시범조 앞으로 나오세요”라고 말하자 여학생 둘이 당당한 표정으로 걸어 나왔다. 우렁찬 목소리와 호루라기 소리로 구령을 맞추고 체조 동작 시범을 보이는 것은 모두 여자들이다. 오늘 과제는 매트 위에서 앞구르기와 뒤구르기, 물구나무서기를 하는 것이다. 학생들은 여기저기서 선생님을 찾았고 곽 교사는 자리를 옮겨가며 학생들을 지도했다. 여교사라서 부족한 점은 없어 보였다.
곽 교사는 “처음엔 남학생들이 체육을 가르치는 여교사에 대해 못미더워했었다”며 “아이들에게 ‘나는 체육교육학을 전공해서 남자 선생님보다 더 잘 가르쳐줄 수 있다’고 계속 설명해야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동료 남자 교사가 없는 것에 대한 아쉬움도 적지 않았다. 곽 교사는 “학교에 큰 행사가 있을 때 이끌고 통솔할 남자 선생님이 있으면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학생들도 여교사가 손수 체육을 가르치는 것에 불편함을 느끼진 않았다. 남교사가 없는 학교생활도 큰 변화는 없었다. 강윤미(11)양은 “여선생님이 남자 아이들 싸움을 말릴 땐 힘들어 보이기도 한다”면서도 “같은 여자라서 더 잘 통하는 게 있다. 여자 선생님이어서 훨씬 이야기하기가 편하다”고 했다. 이규민(11)군은 “남자 선생님은 매를 들 때가 많은데 여자 선생님은 말로 타이르며 친절하고 꼼꼼하게 지도해준다”고 말했다.
금옥초등학교 교사들도 남교사가 없어도 수업을 진행하는 데는 어려움이 없다고 말한다. 이 학교 박명희 교사는 “남자교사가 체육수업을 진행하면 축구시합을 함께 뛸 수는 있을지 몰라도 여학생들은 ‘남자들의 체육시간’에 좀처럼 참여하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다”며 “여학생들의 활달한 부분을 이끌어내고 남학생들의 산만한 부분을 고치는 데는 여교사가 오히려 적합한 것 같다”고 말했다. 학부모들이 우려하는 생활지도 문제에 대해서도 “문제아들의 행동은 남교사가 무섭게 꾸중해서 고쳐야하는 게 아니라 상담과 치료가 필요한 부분”이라고 말했다. 여교사들만으로도 학교가 충분히 운영된다는 자신감이 나타났다.
하지만 남학생들의 생활지도나 야영활동에는 제약이 따를 수밖에 없다. 금옥초등학교의 경우 교사 25명 중 18명이 결혼했기 때문에 밖에서 하룻밤을 자야하는 야영 지도는 모두들 기피한다. 혹시나 학생들이 나쁜 행동을 하지 않을까 우려돼 실시하는 학교 순찰은 이 학교의 유일한 남자교사인 교장선생님이나 교감선생님이 맡아야 했다.
학교에서 만난 학부모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1학년 자녀를 둔 한 학부모는 “아이의 학습지 교사는 남자 선생님이고 학교 담임은 여자 선생님”이라며 “아이를 가르치는 데는 교사의 성품이 중요하지 성별은 중요치 않아 보인다”고 말했다.
하지만 2학년 딸을 데리러 온 한 아버지는 “아들이 다니는 학교에도 남자 선생님이 없다”며 “남자 교사가 보여줄 성 역할이 엄연히 있는데 여자 선생님밖에 없다는 것은 문제”라고 비판했다.
임세정 기자 fish81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