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기은퇴 하는 이창재 효성교회 목사, 필리핀서 후학 양성 ‘제2 사역’

입력 2011-04-19 17:31


목회자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강남 목회를 꿈꾼다. 인적 재정적 자원이 풍부한 데다 사례나 영향력 면에서 타 지역에 비해 월등하기 때문에 목회자들 사이에선 최고의 목양지(牧羊地)로 손꼽힌다. 그런데 그 좋다는 목회 현장을 내려놓고 필리핀 오지로 향하는 부부가 있다. 이창재(65) 서울 효성교회 목사와 김영순(65) 사모 이야기다. 정년이 5년이나 남았지만 주변의 만류에도 부부가 다음달 말 필리핀으로 향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차세대 교회 지도자 육성 때문이다.

“교회를 먼저 생각해야죠. 젊었을 때 10가구를 심방하던 목사라 하더라도 이 나이가 되면 3가구밖에 못해요. 목사가 고집을 부리다 보면 결국 교회만 손해를 보게 되는 거죠. 젊고 유능한 후임 목사가 와 계신데 제가 있으면 아무래도 불편하잖아요. 마침 필리핀 아태장신대 부총장 제의가 와서 맡게 됐습니다.”

1990년 필리핀 마닐라에 설립된 아태장신대는 최근 캠퍼스를 마닐라 북쪽 30㎞쯤의 몬탈반으로 옮기고 교사를 새로 짓고 있다. 학교엔 신학과와 기독교교육학과 선교한국어과가 설치돼 있는데 세계 선교를 위해 교회지도자 육성에 포커스를 맞추고 있다. 말이 부총장이지 사택도 월급도 없는 명예직이다. 오히려 학교를 위해 적잖은 선교비를 내놔야 할 상황이다.

그는 78년 서울 방배동에서 교회를 개척한 후 1000여명의 교인과 희로애락을 함께했다. 명절 때도 부교역자들은 고향에 보내고 홀로 교회를 지킬 정도로 교회 사랑이 지극했다. 교회를 위해서라면 물질과 시간을 모두 내놨다. 말 그대로 ‘헌신’과 ‘희생’이 몸에 배인 것이다. 그렇다면 은퇴 후 편안한 노후를 원했을 김 사모의 반대는 없었을까.



“우리 목사님은 ‘목사인 내가 좀 더 손해보고 힘들면 된다. 교회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며 머슴처럼 평생 교회 중심으로 살아오신 분입니다. 그래서 남편이지만 제가 제일 존경하는 목사님이에요. 필리핀 오지로 가는 게 두렵지 않느냐고요. 개척교회도 했는데 그걸 못하겠어요. 가서 열심히 밥 해드리고 혼자 계시는 총장님도 잘 섬겨야죠.”

은퇴를 결정했지만 열정만큼은 청년 목회자 못지않은 이 목사의 포부는 무엇일까. “인도 베트남 캄보디아 말레이시아 등 아태지역을 책임질 신학생들에게 40년 목회 노하우를 전수하려 합니다. 그리고 현지에 가서 한인 선교사들에게 밥을 많이 사려고 해요. 여럿으로 나뉜 현지 선교사들을 대접하다 보면 결국 하나 될 수 있는 방법이 나오지 않겠습니까.” 현재 안식년 기간 중인 이 목사는 오는 11월 원로목사에 추대된다.

글·사진=백상현 기자 100sh@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