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포커스-박병광] 보아오포럼 vs 다보스포럼

입력 2011-04-19 17:33


중국은 최근 자신의 안방에서 국제적 영향력을 또다시 과시했다. 바로 지난주 중국 남부의 하이난다오에서 열린 ‘보아오(博鰲)포럼’을 두고 하는 말이다. 한때 중국은 스위스의 ‘다보스포럼’이 서구 중심적 논의의 장이라는 데 불만을 표시하면서 아시아의 지역경제협력을 목표로 하는 새로운 포럼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 결과 2002년 중국 주도로 아시아 국가 및 기업, 민간단체들 사이 교류의 장을 지향하면서 탄생한 것이 보아오포럼이다.

처음 보아오포럼이 출범할 당시만 해도 오늘날처럼 세계가 주목하는 포럼으로 성장할 것이라고 예측한 전문가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당시까지도 세계경제의 핵심적 화두는 여전히 미국을 위시한 서구가 주도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10회째를 맞이한 이번 보아오포럼에는 니콜라 사르코지 프랑스 대통령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비롯한 세계 40여 개국의 지도자와 고위관료, 기업인, 학자 등 1400여명이 참석했다.

치밀하고 원대한 中의 전략

또한 포럼에서는 최근 일본 대지진 참사와 리비아 내전 등 국제정세의 불안정 속에서 지속가능한 경제 발전의 해법을 놓고 활발한 의견 교환이 이루어졌다. 지난 1월 26일부터 5일간 러시아를 주빈국으로 열렸던 다보스포럼이 기대만큼 세계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과 여실히 대비되는 대목이다.

국제무대에서 펼치는 중국의 외교 전략은 꽤나 치밀하고 장기적이라는 특징을 지닌다. 최근 성과를 더하고 있는 아프리카, 아시아 등지의 제3세계 국가들과의 특별한 유대관계는 이미 1960∼70년대부터 시작된 것이라는 사실이 이를 잘 입증한다. 마찬가지로 중국은 지난 10년간 치밀하고도 꾸준한 전략에 따라 보아오포럼 띄우기에 힘을 모아왔다. 후진타오 주석과 원자바오 총리가 직접 포럼에 참석해 중국의 경제운용 방향과 국제정세에 대한 의견 등을 피력했으며 최근에는 의도적으로 다보스포럼의 자국 주요인사 참석을 줄여왔다. 특히 금년에는 보아오포럼의 일정과 장소를 ‘브릭스(BRICs) 정상회담’과 교묘히 맞춰서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중국은 보아오포럼의 위상을 최대한 높임으로써 장차 세계경제 논의는 중국에서 진행되어야 한다는 점을 은연중 강조하고 있다. 더 나아가 중국은 장차 보아오포럼을 발전시킨 ‘아시아판 유엔’ 창설의 구상도 갖고 있다. 보아오포럼이 세계적 경제이슈를 선점하는 장(場)이라면 아시아판 유엔 창설을 통해 국제문제에서도 이슈를 주도해 나가겠다는 것이다. 결국 중국은 단기적으로는 기존의 서구 중심적 체제에 편승하지만 장기적으로는 국제정치·경제를 주도하는 중국 중심의 신(新)국제질서의 장을 마련해 나가고자 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21세기 세계 패권의 향배는

실제로 보아오포럼과 함께 열린 브릭스 정상회의에서는 국제금융기구의 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높았다. 브릭스 정상들은 국제통화기금(IMF)이 특별인출권(SDR) 제도를 지속적으로 보완해야 하며 신흥시장국과 개도국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세계경제 변화의 현실을 적극 반영해야만 한다고 주장했다. 또한 세계은행과 IMF 총재 자리를 미국과 유럽이 독식해온 관행을 끝내도록 압박하기도 했다. 국제정치 문제에서도 브릭스 정상들은 중국의 목소리에 힘을 실어주었다. 서방의 리비아에 대한 군사개입을 비판하고 군사력을 배제한 정치적 타결방식을 요구하고 나선 것이다.

물론 경제가 모든 것을 결정하지는 않는다. 마찬가지로 보아오포럼과 같은 논의의 장을 개설하고 이슈를 선점한다고 해서 세계경제의 주도자가 되는 것도 아니다. 그러나 경제는 매우 다양한 변화의 배후에서 작용하는 중요한 힘이다. 21세기 세계패권의 전이(轉移)를 관찰하는 데 중국 주도의 보아오포럼과 서구 주도의 다보스포럼이 어떠한 흥망성쇠의 과정을 겪는지 지켜보는 것 역시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박병광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연구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