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린 돌을 모퉁이 돌로, 지구촌국제학교
입력 2011-04-19 17:29
[미션라이프] 학생 26명에 교사가 32명. 3개 국어 이상의 다중언어 교육, 전문가들이 직접 지도하는 예체능 수업, 수준별 맞춤학습에 적성에 따른 선택수업까지. 학부모들이 “도대체 어느 학교기에”라며 솔깃할 내용이다. 더 놀랄 만한 것은 수업료는 물론 통학버스와 급식, 학용품, 준비물까지 무상이라는 것이다. 이쯤 되면 당장 찾아 나서려는 학부모들도 있을 터. 그러나 이 학교는 아무나 받지 않는다. ‘역전의 주인공’이 될 아이들만 받는다.
지난 18일 서울 오류동 지구촌국제학교를 찾았을 때, 학교라기보다 예식장을 떠오르게 하는 6층 건물과 바로 앞에 지나는 낡은 철길, ‘멈춤’이라 쓰인 건널목 표지까지, 묘한 위화감이 전해졌다. 마치 이 곳에 들어가려면 낡은 생각은 잠시 내려놓으라는 메시지 같았다.
안에 들어서자 딴 세상이다. 한 반에 많아야 여남은 명인 밝고 아기자기한 교실, 대형 LCD 모니터 등 첨단 기자재, 빈 공간마다 세계 각국 지도와 사진, 언어 표현이 붙어 있는 내부는 어느 선진국 학교를 옮겨온 듯하다.
다문화가정 자녀, 중도입국 자녀 등을 위한 사립 특성화 대안학교인 이 곳은 사단법인 지구촌사랑나눔(대표 김해성 목사)이 설립했다. 지난달 2일 26명으로 임시 개교를 한 것은 정식 대안학교 인가를 기다리는 중이기 때문이다. 곧 인가가 나면 총 100~120명까지 모집하고 교원 수도 그 이상으로 늘릴 계획이다.
지금도 중국 방글라데시 베트남 몽골 태국 필리핀 가나 출신 어린이들이 재학 중이다. 이들은 모두 한국어와 영어는 물론, 출신 국가 언어까지 구사하도록 교육 받는다. ‘통합교육’을 위해 한국 어린이들도 10% 안팎으로 받는데 역시 무상 교육이므로 지역 서민층에서 우선 선발한다.
이 많은 나라의 원어민 교사를 어떻게 충당할까. 일반 교육기관은 엄두도 못 낼 일이지만 여기서는 가능하다. 지구촌사랑나눔 산하 여러 기관에서 각 나라 전문 인력들이 와서 교사로 봉사하기 때문이다.
정규 수업은 초등 및 중등 정교사 자격을 가진 6명의 선생님들이 맡고 있으며 김영수 교장은 서울 온수초, 계동초 교장을 지낸 은퇴 교사다.
김 교장은 “편·입학식 분위기가 상당히 침울했다”고 전했다. 그도 그럴 것이, 부모가 불법체류자여서 학교를 못 다녔거나, 이전 학교에서 따돌림과 폭력을 당한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던 것이다. 김 교장은 “대인기피, 공격적 성향까지 보이는 아이들에 솔직히 눈앞이 캄캄했다”고 털어놓았다.
그러나 불과 한 달 반이 지났을 뿐인데도 이제는 그런 ‘과거’를 찾아볼 수 없다. 쉬는 시간을 맞아 두셋 씩 어울려 보드게임, 팽이치기 등을 하는 아이들의 웃음소리는 그 어디서 들어본 것보다도 밝았다. 수업이 시작되자 2학년 ‘은빛’반 아이들은 교사와 빙 둘러 앉아 지난 주말 경험을 한국어와 각국 언어로 나눈다. 쑥스러워 하는 아이는 있어도 표정이 어두운 아이는 없다. 김 교장은 “아이들이 처음으로 ‘다름’을 장점으로 인정받는 경험을 하면서 빠르게 생기를 찾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사장 김해성 목사는 “자신의 뿌리와 부모를 자랑스럽게 여기는 자존감 높은 사람, 다중 언어 전문 인력으로 키우겠다”는 포부를 밝혔다.
기독교 학교를 표방하지는 않는다. 타 종교권 학생들을 배척하지 않기 위해서다. 그러나 “어린아이 하나라도 잃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마 18:14)는 하나님 말씀 앞에 정직하려는 자세가 이미 철저하게 기독교적이다. 앞으로 이 학교에서 역전의 스토리가, 희망의 증거가 수없이 쏟아져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지구촌국제학교 설립자 김해성 목사
외국인 노동자를 위한 선교센터, 쉼터, 급식소, 진료소, 복지센터 등만으로도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지구촌사랑나눔 대표 김해성 목사. 최근에는 지구촌국제학교 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할애한다. 오랜 비전이 첫 결실을 맺는 시점이니만큼 기대도 크고 할 일도 많기 때문이다.
김 목사가 이 학교 설립을 구상한 것은 10년도 더 전이지만 본격적으로 나선 데는 하나의 계기가 있었다. 2005년 이주민 의료센터 산부인과에서 태어난 첫 아이 ‘오심’(Oxim)을 만난 일이다. 방글라데시어로 ‘더 많이’라는 뜻으로 부모가 이름 붙인 이 아이를 안아보며 그는 ‘예수님의 다시 오심’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발견했다. 그 다음 순간, “이 아이를 학교에 못 보내서 귀한 빛이 사위어 버리면 어쩌나”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더는 미룰 수 없다”는 결심이 섰다고.
어려움도 많았다. 교육 사업이 처음이다 보니 시행착오를 숱하게 겪었다. 반면 꼭 필요한 순간마다 기적처럼 도움이 답지했다. 포스코에서 그를 청암봉사상 수상자로 선정해 상금 2억원을 전했고, 가수 하춘화씨는 공연 수익금 전액 1억3000여만원을 기부했다. 10억원이라는 큰 돈을 구할 길 없어 기도만 하고 있는데 한 노인이 찾아와 딱 그만큼을 놓고 갔다. 올해 초 ‘후원의 밤’ 행사 때는 즉석에서 3억여원이 약정됐다.
이 모두가 학교에 투입됐는데도 아직도 20억원 이상이 빚이다. 사방에서 후원자를 모으느라 건강이 상할 정도지만 김 목사의 신념은 흔들림이 없다. “이 아이들을 내버려두면 2등 시민, 잠재적 범죄자가 될지 모릅니다. 그러나 귀하게 키우면 한국을 넘어 세계의 인재, 오바마 미국 대통령 못지않은 인물이 될 것이라고 확신합니다!”(02-863-6622)
국민일보 미션라이프 황세원 기자 hws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