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신도 신학강좌] 파도치는 영성
입력 2011-04-19 17:40
영적 생활을 응원하라
마귀는 우리를 죄의 모습, 저주의 모습, 즉 마귀 자신의 모습으로 변질시켜 보려고 안간힘을 쓴다. 이것을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다면 쉽게 이기겠지만 보이지 않으니 우리 방법으로는 적의 궤계를 알 수도, 이길 수도 없고 적을 몰아낼 수도 없다. 그러니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싸움인가.
사도 바울은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빌 2:12)고 했다. 이 말은 어떤 일이 있어도 악한 영에게 당해서 망하지 않도록 죄를 두려워하라는 말이다. 또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말씀 자체가 생명이요, 축복이요, 죄와 마귀를 이기는 능력이요, 우리가 받은 구원을 지키는 힘이니 이 말씀에서 빠져나가지 않기 위해 항상 조심하고 그 말씀 안에서 살라는 말이다.
마지막으로 예수가 우리를 위해 십자가에 피 흘려 죽으신 그 큰 은혜를 무시하면 그만큼 우리 신세는 불행하니 구원받은 그 위치에서 항상 구원을 지키고 두려움으로 승리의 길을 가라는 것이다.
히브리서 12장 4절에 “너희가 죄와 싸우되 아직 피 흘리기까지는 대항치 아니하고”라고 말씀하신 것은 죄를 피 흘리기까지 대적하라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는 죄에게 너무 관용을 베푼다. 왜 피 흘리기까지 죄와 대적해야 하나? 내 영혼을 죽이려는 그놈과의 싸움에서 내 육체가 사라질 그때까지 대적해 이겨야 하기 때문이다. 절대 그냥 놔둬서는 안 된다. 우리 영혼이 얼마나 귀중하기에 이 땅에서 가장 크게 여기는 목숨을 내놓기까지 싸워서 지키라고 했나?
일제 강점기에 신사 참배를 함으로써 일본 사람들에게 아부해 아주 편안하게 목회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어떤 사람은 끝까지 반대하다 옥에 갇혀 고문을 당하다 순교했다. 나중에 회개하면 그만이지 하고 적당히 타협하고 믿을 수 있는데 왜 꼭 순교까지 해야 하나? 우리 기독교인들에게 죄는 하나님의 원수요, 우리의 원수이기 때문에 목숨을 걸어야 한다.
청군 백군이 시합을 하는데 백군이 청군 이기라고 박수치는 것을 봤나? 청군이 백군 이기라고 박수치는 것을 보았는가? 우리도 마찬가지로 영적 생활이 이기라고 응원해야 한다. 그런데 싸워보려고도 하지 않고 적군 편을 들고 육의 것을 응원한다. 영적 생활이 패배하고 망가지도록 내버려두고 육의 생각이 성공하도록 육의 생활에 흥분되어서 미쳐 있다. 왜 기도해야 할 시간에 집에서 텔레비전 보고 앉아 있어도 그냥 좋아하나?
교회에 와서 통성으로 기도하고 찬송하고 예배할 때 보면 굉장하다. 그런데 나가면서 벌써 적군의 편을 든다. 육신이 영적 생활의 목을 졸라 꼼짝 못하게 만들어 놓고 육신이 좋아하는 대로 살아가면서도 자기 영혼의 아픔과 고통은 무시한다. 자기 영혼의 가난과 자기 영혼이 갈망하는 요청을 배제한다.
우리는 이런 잔인한 사람이 되지 말고 자기 영혼을 사랑할 줄 아는 자가 되어야 한다. 이 땅에서는 나 외에 어느 누구도 나를 사랑해줄 자가 없다. 하나님이 아무리 사랑하시려 해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소용 없다. 내가 나를 사랑해야 한다. 싸움의 대상을 바로 알고 영적 생활이 패배하도록 놔두어서는 안 된다. 적을 잡아 결박시키고 영혼의 영적 싸움을 응원하고 승리하기를 축원한다.
윤석전 목사 (연세중앙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