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을 열며-최현수] 당신들의 개혁
입력 2011-04-18 17:52
요즘 미국의 골드워터-니콜스 법 입법과정을 다시 읽어 보고 있다. 지금 우리 사회에서 논란이 되고 있는 국방개혁 307계획과 비교할 만한 것들이 있어서다.
1986년 미 의회를 통과한 골드워터-니콜스 법은 세계 최강의 군으로 인정받는 미군이 제대로 합동성을 발휘할 수 있는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시 하원의원이었던 레스 애스핀 전 국방장관은 “미국이 대륙 육군을 창설한 1775년 이후 미군 역사상 가장 획기적인 법안”이라고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법이 통과된 지 10여년 뒤인 90년대 중반 국방장관을 지낸 윌리엄 페리는 재임시절 상원 군사위원회에서 “90년 걸프전시 시행된 작전의 성공은 골드워터-니콜스 법의 공이 크다”고 증언하기도 했다.
미 합참조직을 대폭 바꾼 골드워터-니콜스 법은 미군의 잇따른 해외작전 실패와 방만한 국방경영에 대한 질타가 이어지자 군이 이대로는 안 된다는 절박한 상황에서 나왔다. 법의 내용은 국방개혁 307계획과 비슷하다. 특히 각 군의 독자성을 일부 제한하고 합동성 강화를 위해 합참을 보완한다는 핵심 내용에서 일치한다.
미 행정부는 2차 세계대전 직후부터 국방조직 정비에 나섰다. 2차 세계대전 시 미군은 육군과 해군의 갈등으로 골치를 앓았다. 47년 국방조직법을 만들고 합참을 탄생시킨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만약 육군과 해군이 서로 싸웠던 것처럼 적과 열심히 싸웠더라면 우리는 전쟁을 훨씬 일찍 끝냈을 것”이라고 개탄하기도 했다.
2차 세계대전에 참전했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대통령 역시 군간 갈등의 심각성을 절감하고 53년과 58년 두 차례 합참 강화 법을 만들었다. 그러나 근본적인 개혁에는 이르지 못했다. 골드워터-니콜스 법은 28년 만에 미군구조개혁에 나선 셈이 됐다.
입법과정은 쉽지 않았다. 82년 당시 합참의장이었던 데이비드 존스 공군대장과 육군참모총장 에드워드 메이어 장군이 합참개혁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어 미 의회가 청문회를 열고 본격적인 개혁 작업에 나섰다. 그러나 개혁반대세력도 만만치 않았다. 해군 참모총장 토머스 헤이워드 제독 같은 이는 “현 조직은 전적으로 임무에 적절하며 그 기능을 잘 수행하고 있다. 현시점에서 어떤 큰 수술도 필요치 않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법안은 의회를 통과했다. 여기에는 몇 가지 요인이 있었다. 우선 배리 골드워터 상원의원에 대한 신뢰였다. 당시 상원의원이었던 조셉 바이든 부통령은 “골드워터가 추진했기 때문에 반대가 적었다. 다른 사람이 주도했다면 반발이 적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추진 주체의 객관성에 대한 신뢰가 있었다는 해석이다.
두 번째는 끈질긴 설득작업이었다. 개혁 추진론자들은 법 통과까지 무려 4년간 22번의 청문회를 열고 수많은 증언을 수집하고 꼼꼼하게 연구했다. 반대론자들과 대화를 통해 개혁 필요성을 설득해 갔다. 골드워터는 “자유세계에서 가장 거대한 관료조직에 대해 대대적인 변화를 일으키는 일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장기적인 준비를 한 것이다.
우리 군은 골드워터-니콜스 법의 입법과정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이들은 반대 목소리를 ‘자군 이기주의’ 혹은 ‘소군(小軍)의 피해의식’으로만 보지 않았다. 대신 그들의 논리를 경청하고 합의를 도출하려고 했다. 개혁계획을 실천에 옮겨야 하는 주체는 군이다. 군 내부의 반대의견을 누르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도리어 무언의 저항이 더 커질 수 있다. 왜 변해야 하고 얼마나 변해야 하는가에 대한 합의가 먼저 이뤄져야 한다.
이번 개혁이 ‘당신들의 개혁’이 아니라 ‘우리들의 개혁’이 되기 위해서는 국방개혁 307계획을 입법화하는 것도 급한 일이기는 하나, 더 시급한 것은 개혁을 추진해 나갈 군 내부의 합의를 끌어내는 일인 것 같다.
최현수 군사전문기자 hscho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