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손수호] 발레리NO, 발레리노

입력 2011-04-18 17:49

발레가 공연예술의 아이콘으로 뜨고 있다. 인기 레퍼토리가 무대에 오르면 만원사례이고, 몇몇 스타 무용가는 팬클럽을 거느린다. 외국 유명 발레단의 주역 자리를 꿰찼다는 소식도 잦다. 체형을 잡아 주는 발레의 역할이 부각되면서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교습소 찾는 사람이 많다고 한다.

영화와 뮤지컬에도 발레가 나온다. 영화 ‘블랙 스완’은 춤과 인간의 내밀한 관계를 그려 공감의 폭을 넓혔다. 발레 뮤지컬 ‘빌리 엘리어트’는 소설과 영화에서 라이브 무대에 적합한 요소를 조합해 흥행몰이를 하고 있다. ‘1박2일’에 프로 발레단원이 반짝 출연한 적도 있다.

이러한 인기에 편승한 방송 프로가 개그콘서트의 ‘발레리NO’다. 250년 전통을 가진 러시아 발레단의 연습실이 무대인데, 남성 무용수가 입은 타이츠의 돌출부위를 놓고 벌이는 노출과 은폐의 숨바꼭질이 웃음의 포인트다. 제작진은 유명 발레리노에게 물은 결과 “문제 없다” 답변을 얻었다는 사실을 면죄부로 삼고 있다.

그러나 이 코너는 개인의 호불호를 넘어 발레에 관한 오해를 포맷으로 삼았다는 점에서 문제다. 발레리노의 돌출부위는 ‘서포트’라 불리는 댄스벨트가 만들어 낸다. 도약하거나 회전할 때 움직이는 물체가 있을 경우 선(線)이 망가지므로 T팬티에 부드러운 소재를 넣어 볼록하게 처리하는 것이다. 오랜 전통이 빚어낸 복식을 오해하는 것도 모자라 희화화한 것은 발레에 대한 모독이다.

성(性) 차별도 그렇다. 발레리나들도 유방이 출렁이면 우아한 동작의 구현에 방해되기 때문에 주방에서 쓰는 투명한 비닐 랩으로 가슴을 싸매기도 한다. 만일 방송에서 발레리나의 가슴을 소재로 프로그램을 만들었으면 어땠을까. 하물며 남성의 성기를 대상으로 삼고 있는 데도 웃고 박수치고 난리다.

태양왕 루이 14세의 경우에서 보듯 발레는 원래 남성의 예술이었다. 궁중연희에서 예술로 격상시킨 것이나, 화려한 테크닉을 개발하고 예술성을 부여한 것도 남성이었다.

‘무용의 신’ 바슬라브 니진스키, 불세출의 발레리노 루돌프 누레예프, 영화 ‘백야’에서 환상적인 춤 연기를 선보인 미하일 바리시니코프를 보면서 서포트에 눈을 집중한 적이 있는가.

개콘의 ‘발레리NO’는 이쯤 코너를 접는 게 낫겠다. 무대에서 벌어지는 해프닝과 에피소드가 얼마나 많은데, 기껏 남성 무용수의 속옷에서 웃음을 건지려 하나. 모처럼 피어나는 발레의 꽃이 꺾여 버릴 수도 있다.

손수호 논설위원 nam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