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최찬영 (12) 태국서 얻은 맏아들 갑자기 의식불명
입력 2011-04-18 17:46
태국에서 얻은 맏아들 사무엘이 갑자기 의식불명 상태에 빠졌다. 아내는 놀란 마음을 쓸어내리며 아이를 진찰했다. 다행히 콜레라는 아니었다. 당시 태국에서는 모기로 전염되는 급성뇌염이 돌고 있었다. 이 병에 걸리면 적혈구가 급속히 파괴돼 생명이 위태로웠다. 진찰 결과 사무엘은 이 병에 걸린 것으로 판명 났다. 방콕에서만 2만명의 아이가 이 병에 걸렸고, 그중 1만명 이상 목숨을 잃었다.
마음이 천근만근이었다. 아비로서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백약이 무효였다. 축 늘어진 아이를 붙잡고 하나님께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다.
“주님, 선교지에서 얻은 첫아들입니다. 병들어야 한다면 제가 들어야지, 왜 이 어린 게 병들어야 합니까? 의사들도 어떻게 할 수 없다고 합니다. 주님의 손길에 맡긴 채 주님의 능력만 바랄 뿐입니다. 다시 한번 건강하게 뛰놀 수 있도록 은혜를 주시옵소서.”
의사인 아내도 기도 외에는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오후 4시. 집회 장소로 떠나야 할 시각이 다가왔다. ‘집회를 취소해야 할 것인가? 사경을 헤매는 아들을 남겨두고 떠나야 한단 말인가? 나 없이 집사람 혼자 이 일을 감당할 수 있을까?’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나는 결국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드리고 집회 장소로 가기로 했다.
‘주님, 제 힘으로는 아이를 살릴 수 없습니다. 아이의 생명을 주님께 맡깁니다. 뜻대로 하시옵소서. 저는 내일 아침 집회를 인도하기 위해 떠나겠습니다. 거기서 말씀을 전할 때 성령으로 함께하소서.’
차도가 없는 아이와 아내를 뒤로 한 채 집회 장소로 떠났다. 집회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로 잘 마무리될 수 있었다. 100명이 넘는 결신자들이 나왔다. 집회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지구를 몇 바퀴 도는 우주선의 궤도처럼 멀게만 느껴졌다. 마음이 다시 무거워졌다.
‘아이는 어떻게 됐을까? 1만명이나 되는 아이들이 죽었다는데….’
오랜 시간이 걸려 집에 도착했는데 뜻밖의 모습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사경을 헤매던 아이가 방실방실 웃으며 나를 반겨준 것이다. 눈물이 핑 돌았다. 나는 그동안 병간호로 지치고 거칠어진 아내의 얼굴을 바라보며 두 손을 꼭 잡았다.
‘주여, 감사합니다. 사무엘에게 부활의 생명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이 아이도 평생 주님을 위해 사는 아이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나는 OMF 선교사들이 선교활동을 한 태국 야우족 마을에 갈 기회가 있었다. OMF는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가 세운 중국내지선교회(CMI)가 발전된 것이다. 산기슭에 약 400가구가 촌락을 이루며 살고 있었다. 놀라운 것은 이들 모두가 하나님을 믿고 있었다는 점이었다. 난 그곳에서 OMF 소속 두 여선교사를 만났다. 그들은 원주민들과 꼭 같은 집에서 살고 있었다. 대나무로 마루를 엮고 벽을 만든 집에서 살았다. 원주민들의 집에는 가재도구가 여기저기 널려있어 지저분해 보였지만 선교사들의 집은 깨끗하게 잘 정돈돼 있는 게 다를 뿐이었다.
예수님이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종의 형상을 입어 우리와 같이 되신 것처럼 OMF 선교사들은 원주민과 동화되는 ‘성육신 선교정신’을 보여주고 있었다. 허드슨 테일러 선교사의 후예로서 OMF 선교사들은 산속의 원주민들을 도우며 복음을 온몸으로 전하고 있었다. 나는 OMF 선교사들의 요청으로 한센병 환자를 위한 집회를 인도하게 됐다.
정리=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