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돌아온 ‘DJ의 전설’ 김기덕 “방송인은 대중의 마음 읽을 줄 알아야죠”
입력 2011-04-18 18:12
MBC ‘FM 골든디스크 김기덕입니다’의 고별 방송이 있은 지난해 4월 25일. 스튜디오는 전국에서 올라온 김기덕(63)의 팬 40여명으로 북적였다. ‘2시의 데이트 김기덕입니다’가 첫 방송된 1973년부터 무려 37년 동안 위로와 격려를 전하고, 안식처 역할을 했던 60대 DJ를 배웅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클로징 멘트에서 김기덕은 “인생에 은퇴가 없듯이 새로운 출발을 하려 한다. 어떻게 다시 만날지 모르지만 기회가 오리라 믿는다”고 했다. 하지만 팬들은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김기덕은 그렇게 떠났다. 많은 이들은 은퇴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다. 하지만 그는 1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 지난 9일부터 SBS 러브FM(103.5㎒) ‘2시의 뮤직쇼 김기덕입니다’를 통해서다. 매주 토·일요일에만 방송되는 프로그램이지만 녹슬지 않은 입담으로 내공을 뽐내고 있다.
최근 그가 대표이사로 있는, 서울 여의도 소재 위성 DMB 업체 ㈜와미디어 사무실에서 그를 만났다. 복귀 소감을 묻자 그는 “쉬는 체질이 못 된다. 방송인에게 은퇴란 없다”고 말했다.
사람들은 김기덕을 DJ계의 ‘살아있는 전설’로 부른다. 96년까지 ‘2시의 데이트’를, 이듬해부터 지난해까지 ‘골든디스크’를 진행했다. 인생을 오로지 라디오에 투신한 것이다. 94년 ‘2시의 데이트’가 7500회를 돌파하며 기네스북 인증을 받기도 한 김기덕. 그의 방송 횟수는 몇 회일까. 당사자인 자신도 세본 적이 없다고 했다. 1만회는 족히 넘었을 거라는 추측만 내놓았다. DJ로서 그가 이만큼 장수할 수 있었던 데는 인기가 그만큼 높았기 때문이다.
“과거엔 제가 배우 가수 코미디언을 망라한 인기 연예인 순위에서 10위권에 든 적이 많았어요. 그만큼 ‘라디오 시대’였죠. 가수들은 TV와 라디오 스케줄이 겹치면 당연히 라디오에 나왔어요. 라디오에 안 나오고 TV에 나가면 그 뒤부터 (라디오 제작진 자존심 때문에) 라디오 출연이 안 되는 일도 있었죠. 서태지가 나오기 전까지는 쭉 그랬어요.”
높은 인기에도 김기덕은 TV에 거의 출연하지 않은 인물로 유명하다. 그는 “라디오는 상상력의 매체인 만큼 잘생기고 못생기고를 떠나서 실물을 보게 되면 실망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TV랑 라디오는 ‘물이 다르다’고 봐야 해요. (인기 DJ인) 최유라, 강석이 나가서 ‘TV 스타’처럼 자연스럽게 얘기하기 힘들어요. 라디오에 익숙한 진행자는 TV에 나가봤자 별 이득이 없어요.”
20대에 시작해 환갑을 넘긴 지금까지 방송을 진행하는 그는 명멸하는 숱한 스타들을 지근거리에서 지켜봤다. 추억담을 물었다. 그는 과거에 마주했던 스타들의 모습을 들려줬다.
일반인처럼 소박한 옷차림으로 라디오 부스에 앉아있던 탤런트 고(故) 최진실, 무슨 일이든지 최선을 다해 최고의 게스트로 기억되는 가수 김건모와 신승훈, 자주 눈물을 보일 만큼 마음이 여렸던 가수 이소라…. 그는 “인기가 많고 장수하는 스타일수록 시간을 절대 어기는 법이 없다”며 “최고의 스타는 무슨 일을 하건 열심히 한다. 함께 대화를 나누면 ‘왜 이 사람이 스타인 줄 알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고 말했다.
DJ계의 거장인 김기덕이 인정하는 후배 DJ는 누구일까. 그는 현재 큰 사랑을 받는 인기 DJ들을 열거했다. 칭찬이 이어졌다. “최유라는 순발력, 언어 구사력 모든 면에서 천재예요. 이문세는 생각이 깊고 팬들의 마음을 읽어내는 감성을 갖춘 DJ죠. 배철수는 처음에는 별로 두각을 못 보였어요. 그런데 세월이 흐를수록 빛을 발하고 있어요. 좋은 방송인은 대중을 읽어낼 줄 알아야 합니다.”
72년 9월 MBC 아나운서로 입사한 김기덕은 이듬해 3월부터 ‘2시의 데이트’를 진행했다. 입사연도를 기준으로 하면 ‘40년차 방송인’이다. 하지만 그는 이런 타이틀에 질색을 했다. ‘방송을 오래 했다’는 말이 왠지 듣기 싫다는 것이 이유. 김기덕은 마이크 앞에서 숱한 사연을 소개했지만 눈물을 보인 적은 없다고 했다.
“방송하면서 울었던 기억은 없는데 졸았던 적은 더러 있었어요. 졸릴 때는 긴 음악 틀어놓고 잤어요. 그렇게 진행하면 청취자들이 ‘오늘 방송 차분해서 좋았어요’라고 말해주더라고요(웃음).”
박지훈 기자 lucidfal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