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北 비핵화’ 공감했지만 6자 재개 열쇠는 美 손에…
입력 2011-04-17 22:33
힐러리 클린턴 미국 국무장관이 16~17일 방한해 이명박 대통령과 김성환 외교통상부 장관을 만나 북핵 문제 해법 등을 논의했다. 18시간에 걸친 짧은 일정이었지만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 6자회담 사전정지 작업 등 굵직한 현안에 대한 양국 간 입장이 조율됐다는 분석이다.
이 대통령 접견, 한·미 FTA 조속 비준키로=이 대통령은 17일 청와대에서 클린턴 장관을 접견하고 “한·미 FTA 발효가 3년 이상 지체돼 협정이 가져올 막대한 경제·안보적 이익을 양국 국민이 누리지 못하고 있다”면서 “조속한 비준을 위해 함께 노력하자”고 말했다고 청와대 관계자가 전했다. 클린턴 장관은 “한·미 FTA에 대한 버락 오바마 대통령의 의지가 강력하다”며 “조기 비준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두 사람은 지진으로 일본이 어려운 상황에서 한·미·일 3각 공조가 중요하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으며, 일본 원전 사태도 정보교환 등을 통해 긴밀히 협력하기로 했다.
중대 기로 맞은 북핵 문제=클린턴 장관 방한을 계기로 북핵 문제는 표면적으로는 대화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관측이다. 한·미·일이 마련한 ‘남북 비핵화회담→북미대화→6자회담’으로 이어지는 단계적 접근 방식에 중국과 북한이 일단 수용의사를 내비쳤기 때문이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3단계 접근방식은 중국이 먼저 공식화했지만 우리 정부가 지난해 여름부터 제기했던 것”이라며 “북한의 호응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6자회담이 성사되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남북회담과 북·미 대화에서 북한이 비핵화를 위한 선행조치를 해야 하고,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한 책임 있는 조치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 한·미 양국의 일치된 의견이다.
비핵화 선행조치는 북한 우라늄농축프로그램(UEP) 중단,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 중지, 국제원자력기구(IAEA) 전문가의 영변 우라늄 농축시설 접근 등이다. 하지만 북한은 UEP 문제는 평화적 핵 이용이며, 6자회담에서 논의돼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특히 천안함·연평도 사건에 대한 우리 정부 입장은 강경하다. 정부 당국자는 “북한의 책임 있는 조치는 우리들(한·미·일)의 모든 행보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강조했다. 지난 15일 또 다른 정부 고위 당국자가 백두산 화산 연구를 위한 남북 당국 간 회담은 시기상조라고 언급한 것도 두 사건에 대한 북측의 태도 변화 없이는 남북관계 진전이 어렵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여러 난관이 있는 가운데서도 6자회담 성사의 키는 미국이 쥐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미 정부가 검토하고 있는 대북식량 지원 문제와 오는 26일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의 방북이 북핵 문제와 깊이 연관돼 있기 때문이다.
방한 이모저모=클린턴 장관은 빌 클린턴 정부 당시 영부인으로 2번, 국무장관으로는 4번째 방한이다. 이번은 독일에서 열린 북대서양조약기구(NATO) 외교장관 회담 참석에 이어 일본 방문을 검토하던 중 막판에 추가된 일정이다. 계속된 해외출장에 지친 클린턴 장관을 배려한 듯 과거 방한 때와는 달리 만찬이나 기자회견, 대통령과 식사 등도 모두 생략됐다. 전날 오후 4시45분쯤 전용기를 타고 경기도 성남 서울공항에 도착한 클린턴 장관은 오후 7시30분부터 서울 한남동 외교장관 공관에서 김성환 외교장관과 회담했다. 이튿날 이 대통령을 예방한 클린턴 장관은 대화 도중 갑자기 “한국 정부가 리비아에서 미국 국민의 철수를 도와주신 데 감사드린다”고 인사를 건넸다. 지난달 초 이미 대사관을 철수시킨 미 정부를 대신해 우리 정부가 자국민 철수를 도와준 데 대해 감사 표시를 한 것이다. 당시 벵가지에 머물던 미국 남성 1명은 한국 정부가 동원한 그리스 선박을 타고 철수했다. 클린턴 장관은 이날 오전 11시쯤 다음 행선지인 일본으로 떠났다.
이성규 기자 zhibag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