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스파일] 방사능 공포와 건강 염려증
입력 2011-04-17 17:44
직장 여성이자 주부인 B씨는 요즘 신문, 뉴스를 통해 하루에도 몇 번씩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로 인한 방사능 유출 소식을 접하면서 마음의 병을 얻었다. 구소련 체르노빌 원전 사고와 같은 최고 위험 7등급 수준이라는 언론의 보도가 아직은 크게 가슴에 와 닿지 않고 있지만 혹시나 하는 불안감을 완전히 떨쳐버릴 순 없었기 때문이다.
B씨는 급기야 며칠 전부터는 침을 삼킬 때마다 목에 뭔가 걸리는 느낌이 계속되고, 왠지 무기력하고, 잠도 잘 오지 않아 피곤함이 가시질 않는다고 호소했다. 벌써 몇 군데 병원에 가서 진찰을 받아봤지만, 의사들의 정상이라는 판정이 썩 믿기지 않는다.
방사능 공포가 한 달여 째 확산되면서 마음의 병을 얻은 사람들의 병원 방문도 늘고 있다. 불안감이 신진대사를 방해해 각종 이상 증상을 유발하고 있는 것이다. 이른바 스트레스와 연관된 건강염려증으로 인한 전형적인 증상이다.
건강염려증은 신체적 증상이나 감각을 잘못 받아들여 자신이 심각한 병에 걸렸다는 생각에 집착하고, 결국 그에 대한 공포가 신체질환으로 나타나는 일종의 심신증(신경증)이다. 이 병에 걸린 환자들은 병원에서 자세한 진찰을 받고 병이 없다는 확진을 받는다 하더라도 이를 믿으려 하지 않고,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며 ‘닥터 쇼핑(doctor shopping)’을 하고 다니는 것이 특징이다.
이들에게는 의사가 검사결과를 근거로 아무리 정상이라고 설득해도 소용이 없다. 이들은 지나치게 신체 감각에 민감한 경향이 있어서 보통 사람들은 약간의 불편 정도로 느끼는 것도 아주 대단한 고통으로 느끼기 쉽다.
정신분석학적으로는 타인에 대한 공격성이나 증오감이 신체 이상 증상으로 나타난 것으로 보며, 과거에 가족이나 애인을 잃었다거나 배척당하고 실망을 한 경험을 가진 사람들일수록 심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래서 그런지 건강염려증 환자들은 죄책감을 느끼거나 자기 자신을 비하하는 경우가 많다. 신체적 고통이 속죄를 하는 한 수단으로 작용하는 셈이다. 아울러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인 책임과 의미로부터 도피하려는 경향이 무의식 중 스스로 환자 역할을 하도록 이끌게 된다는 분석도 있다.
따라서 건강염려증은 스트레스 요인을 찾아 제거하고 안정을 찾는 게 최우선이다. 스트레스가 사라지면 언제 아팠던가 싶게 마음의 병으로부터 벗어나 회복된다.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선 명상, 기도, 여행, 취미생활 등이 권장된다.
그러나 마음의 병이 아주 깊을 때는 정신과적인 치료를 받는 게 좋다. 항우울제 계통의 약물 및 심리상담 치료를 병행하면 회복에 큰 도움이 된다.
한창수 고려대 안산병원 정신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