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김재희] 비겁한 반칙

입력 2011-04-17 17:51


벚꽃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는 화창한 봄날, 이런 화사함과 어울리지 않는 묵직한 한 주를 보냈다. KAIST 학생들 몇 명이 연이어 끔찍한 선택을 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들었기 때문이다. 이 학교 이웃에 살면서 학생들을 가까이 볼 기회가 많아서 그랬는지 자식 같은 젊은이들의 죽음에 마음이 많이 힘들었다.

청년시절은 원래 자신과 가족, 학업과 교우관계에 대한 여러 가지 문제로 기쁨과 슬픔, 성취와 실패, 그리고 불안과 분노의 다양한 감정들로 혼돈스러운 격동의 시기다. 이 시기에는 얼마든지 방황하고, 좌충우돌 탐색하고, 휘청대다 넘어질 수 있지만, 그래도 툭툭 털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은 청년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 아닐까. 그렇지만 어떤 이유에서든 살아보지도 않고 미리 삶을 포기해 버리는 것은 비겁한 반칙이다.

이들이 왜 자살을 선택했는지 잘 알 수 없지만 우울과 외로움, 심한 스트레스와 절망감으로 고통스러웠던 것 같다. 이런 혼돈된 상황에서는 합리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떨어져 본인에게는 올바른 선택 같지만 정작 모두에게 고통을 주는 나쁜 결정을 내리기 쉽다. 그래서 이런 일이 있기 전에 자신을 소중하게 보살피는 것은 생명을 맡은 자로서 꼭 가져야 할 책임이 아닐까. 이들은 자신을 어떻게 보살폈기에 삶을 조급하게 포기해 버렸을까? 이들은 과연 죽음을 통해 무엇을 얻었으며 뒤에 남겨진 우리에게 무엇을 남겼는가?

이들은 높은 성취를 이룬 자만이 사랑받으며 살아갈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을까? 그래서 더 가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서는 더 높이 올라가야 한다는 강박적 스트레스에 시달린 것은 아니었을까? 이들은 사람들의 인정이나 명성, 자존심같이 소중한 것에 조금이라도 손상을 입으면 모든 것을 잃어버린 실패자라고 생각했을까? 인생은 과연 성공이 아니면 실패라는 이분적인 논리로만 평가할 수 있는 것일까? 이들이 먼저 다른 사람에게 다가가 마음을 열고 외로움의 벽을 헐 수는 없었을까? 이들은 자기 스스로에게 좋은 친구였을까? 이들은 또한 길을 잃고 헤매던 절망적인 순간에 자신을 진정으로 보살펴주는 높은 분이 계시다는 생각을 해 봤을까? 이 질문에 대한 답변은 영원한 침묵이 되어 버렸다.

삶은 만만하지 않지만 살 만한 가치가 있으며, 지금 힘겨워하는 고통도 언젠가는 지나가 버린다는 사실을 이들이 알았더라면. 하나밖에 없고 또 한 번뿐인 생명을 소중히 가꾸며 살아가는 것이 어쩌면 가장 귀한 삶의 성취라는 사실을 이들이 알았더라면. 앞을 향해 달려가다가도 가끔은 머물러 자신을 되돌아볼 여유를 가져야 한다는 사실과 삶에는 한 길만 있는 것이 아니라 다른 대안도 있다는 사실을 이들이 알았더라면. 또 고통스러운 순간에 도움을 구한다는 것이 삶의 실패가 아니라 진정한 용기일 수 있다는 사실과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들이 주위에 많다는 사실을 이들이 진작 알았었더라면. 서둘러 잘못된 선택을 해버린 아까운 젊은이들의 삶을 생각하며 안타까움과 아쉬움으로 한참을 마음 아파했다.

김재희 심리상담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