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마른땅

입력 2011-04-17 18:01


여호수아 3장 7∼17절

우리가 가지고 있는 신앙에 대한 가장 큰 오해 중 하나는 ‘지성이면 감천’식의 이해입니다. 신앙을 내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정성을 쌓느냐의 싸움 혹은 자기극복의 차원으로 오해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신앙을 인간이 얼마나 훌륭한 조건을 쌓느냐의 싸움이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어떤 존재이며, 그런 자를 위하여 하나님이 어떤 방법과 능력으로 일하시는지로 이해할 뿐입니다.

오늘 요단강 앞에 당도한 이스라엘에 하나님은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을 먼저 앞세우십니다. 언약궤는 하나님의 권능을 상징하기도 하나, 보다 근본적으로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패역한 존재인가를 상징적으로 보여줍니다.

궤 안에 담긴 아론의 싹 난 지팡이는 고라 자손의 반역으로 인한 결과물이었고, 십계명 돌판은 이스라엘 백성의 우상놀음을 상기시킵니다. 또 만나를 담은 항아리는 만나의 기적을 경험하면서도 여호와의 입으로 나오는 말씀을 의지하지 않았던 이스라엘의 불순종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언약궤는 인간이 하나님 앞에서 얼마나 그분의 은혜가 필요한 존재인지를 보여줍니다. 따라서 언약궤가 백성들에 앞서 요단강으로 들어가도록 하신 것은 이 백성들의 구원을 위해서 장차 오실 어린양 그리스도의 은혜 외에는 소망이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어린양의 죽음을 상징하는 언약궤가 요단강 속으로 들어가게 될 때, 하나님은 가나안 일곱 족속을 다 내쫓게 될 것이라는 약속을 더하여 주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이 너희 가운데에 계시사 가나안 족속과 헷 족속과 히위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기르가스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너희 앞에서 반드시 쫓아내실 줄을 이것으로서 너희가 알리라”(수 3:10)

언약궤가 상징하는 어린양의 죽음과 가나안 정복에 대한 약속 사이에 어떤 의미와 관계가 있는 걸까요? 로마서는 아버지께서 아들을 내어주신 것에서 성도의 인생을 궁극적으로 승리의 자리까지 인도하시겠다는 약속이 포함되어 있음을 말합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롬 8:32)

아들을 지불하셨으니 성부 하나님께서 절대 포기하지 않고 성도의 인생을 책임지시고, 구속의 완성에까지 견인하시겠다는 약속인 것입니다. 성도의 인생에 찾아와 구속의 은혜뿐만 아니라, 그 구원이 최종적으로 완성되기까지 끊이지 않을 하나님의 열심의 선언입니다.

언약궤를 멘 제사장들이 요단강에 발을 들여놓을 때 강의 물이 끊어졌는데, 여기서 ‘끊어지다’는 히브리 음으로 ‘카라트’로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구속사적 차원에서 언약이 맺어질 때 쓰이던 단어입니다. 제사장들의 발이 요단강 물에 잠길 때, 그것이 근거가 되어 갈라진 것이 아니라 구속을 위한 언약이 근거가 되어 갈라진 것입니다. 놀랍게도 물이 갈라진 직후 이스라엘이 건넌 땅은 마른땅이었습니다(수 3:17). 홍해를 건너게 하시어 이스라엘을 구원하실 때 바다의 바닥을 말리셨던 것처럼, 강바닥을 말리시어 완전한 구원의 산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성도의 인생을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근거를 마련하셨고, 직접 길을 만드셨고, 그 길을 말리시며 승리를 보장해 주십니다. 이 마른땅의 완전한 구속이 여러분의 인생길에 함께하며, 순종으로 이 구속을 뒤따라가는 은혜가 있으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송태근 목사 (강남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