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경숙 ‘엄마를 부탁해’ 美 열풍 주역 번역가 김지영씨가 밝히는 비법

입력 2011-04-15 21:34
작가와 소통해야 최상의 번역 작품 나와

소설가 신경숙씨의 장편 ‘엄마를 부탁해’의 영문판 ‘Please Look After Mom’이 한국문학번역의 역사를 다시 쓰고 있다. 초판 발행 부수 10만부, 출간 직후 아마존닷컴 전체 순위 20위권 진입이라는 상업적인 성공도 무시할 수 없지만 이 책의 근본적인 성공 요인은 신경숙 자신도 언급했듯 “전문번역가 김지영씨의 번역서 같지 않은 자연스러운 번역”에 있다. 김지영(30)의 번역엔 어떤 비법이 숨어 있는 것일까. 한국문학번역원(원장 김주연) 주최로 지난해 9월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제4회 세계번역가대회’에서 그가 발표한 발제문을 중심으로 그 비법의 베일을 벗겨본다.

김지영이 말하는 좋은 번역에는 세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 우선, 번역이 애초부터 영어로 쓰여진 글처럼 읽혀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엔 논란의 소지가 있다. 번역본이 정확히 한국어 원문처럼 읽혀야 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기 때문이다. 미국에서도 원문에 충실한 러시아문학 번역서가 호평을 받고 있는 게 사실이다. 하지만, 그는 한국문학이 미국에서 러시아문학과 같은 위치에 있지 않다는 점을 강조한다.

“사실, 대다수 미국인은 우연하게나마 한국 소설 한 권 제대로 읽어본 적이 없다. 미국인들은 번역서 읽기를 달가워하지 않는 걸로 유명하다. 전체 출간도서 가운데 문학 번역서는 1%에 지나지 않는다. 미국에서 한국 작가는 말할 것도 없이, 아시아 작가의 출간 사례가 얼마나 적은지 짐작할 수 있다. 한국어의 구조와 한국의 문학 전통 그리고 문화는 일반 미국인들에게 너무 이질적이고 낯설다. 나는 독서 경험을 방해할 만한 장벽을 허물어서 새로운 독자들이 한국문학을 즐길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는 번역가란 “작가와 소설 작품의 대변인이 되는 것”이라고 단언한다. 물 흐르는 듯한 번역의 매끄러움은 원작이 돋보일 수 있는 발판을 제공하는 데 아주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그는 가끔 문장 구조를 바꾸기도 한다. 긴 문장을 쪼개야 글이 매끄러워진다면 문장을 쪼개야 한다는 것이 김지영의 생각이다. 더구나 영어권 독자들은 짧은 문장을 선호한다. 영어로 된 문단이 너무 헷갈리면 의미와 예술성을 그대로 살리는 한도 내에서 미국인의 기준에 맞게 본문을 정돈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가 지적하는 좋은 번역의 두 번째 요소는 퇴고에 퇴고를 거듭하는 것이다. 또한 여러 단계에 걸쳐 가까운 친구들과 동료 번역가에게 자신이 번역한 원고를 읽게 하고 교정을 부탁하는 과정도 중요하다. 그는 “번역 초기 단계에는 한영 번역을 하는 사람에게 부탁하는 게 이상적”이라고 말한다. 실수나 모순되는 부분을 잡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원고를 읽어봐 달라고 부탁하는 편이다. 이렇게 하면 영어 원어민의 힘을 빌어 어색한 어구나 헷갈리는 문장을 확실히 잡아낼 수 있다. 이런 방법이 도움이 되는 이유는 텍스트를 몇 달 넘게 붙잡고 있다 보면 어색한 부분이 눈에 들어오지 않기 때문이다. 설령 결국 원고를 수정하지 않게 되더라도, 그와 같은 정보는 매우 소중하다.”

좋은 번역의 세 번째 요소는, 만약 작가가 살아있다면 그와 접촉하라는 것이다. 오직 작가만이 대답해 줄 수 있는 질문이 있기 때문이다.

“만약 내가 어떤 장면이나 어구의 의도를 파악하는 데 애를 먹고 있거나 편집자가 해명이나 수정을 요구한다면, 번역 과정에 기꺼이 참여하려고 하는 작가가 있는 게 이상적이다. 또한, 미국인은 한국인과 정서가 아주 다르니까, 작가가 자기 작품을 살짝 손질하는 것에 대해 개방적인 태도를 보인다면 최상의 번역이 나오는 데 무척 도움이 된다. 지금까지 내가 함께 일한 작가들은 운좋게도 전부 그런 분들이었다. 다들 이메일에 능숙하고, 신속하며, 통찰력 있고, 편집자의 제안에 따라 기꺼이 자기 소설을 바꿔 써 주었다.”

정철훈 선임기자 chju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