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상 영구 임대로 반환과 같은 조건이다.” “제2의 병인양요로 굴욕 협상이다.”
지난 2월 7일 체결된 ‘조선왕조 왕실의궤에 관한 대한민국 정부와 프랑스공화국 정부 간 합의문’을 두고 논란이 일고 있다. 정부 측에서는 “5년 단위 대여를 자동 갱신하는 조건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영구 대여한 것”이라는 입장이고, 시민단체 등에서는 “5년 대여를 정부가 영구 반환으로 오역한 굴욕적인 협상”이라는 주장이다.
합의문 제1조를 보면 “동 대여는 갱신되는 5년 단위 기간으로 한다”고만 돼 있다. 또 합의문 전체의 유효기간을 규정한 제10조 역시 “금번 합의는 5년 기간으로 체결한다. 동 합의는 양 당사자가 외교채널을 통해 서면 통보함으로써 5년 단위 기간으로 갱신된다”고 돼 있다. 합의문 어디에도 ‘영구 대여’를 위한 양국의 합의나 노력을 명시해 놓지 않은 것이다.
제3조는 “2015년과 2016년에 한국과 프랑스 간 상호 문화교류의 해 틀 내에서 한국문화재를 주제로 하여 프랑스에서 개최되는 전시회 및 양국 간 교류를 위해 (중략) 이번 의궤들이 가용될 수 있도록 한다”고 명시했다. 이 때문에 의궤가 2015, 2016년 다시 프랑스로 가게 되는데 5년 갱신이 되지 않으면 돌려받지 못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제4조 “의궤들의 대여는 유일한 성격을 지니는 행위로서, 그 어떤 다른 상황에서도 원용될 수 없으며, 선례를 구성하지 않는다. 이는 문화재 반환요청 관련 당사자들을 대립하게 했던 분쟁에 최종적인 답이 된다”고 규정했다.
이에 대해 한국문화유산정책연구소는 “프랑스가 ‘대여’ 외의 다른 방식으로는 우리 문화재를 반환하지 않겠다는 뜻이고, 외규장각 도서 이외의 약탈 문화재는 일절 돌려주지 않을 뿐더러 반환 논의의 대상도 되지 않는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유물 호송에 따른 제반 비용은 국제관례에 따라 당연히 외규장각 도서를 대여 받는 우리 측이 부담하지만 유물 포장과 호송 등에 프랑스 측의 반대로 전혀 참가하지 못한 것으로 드러나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이번에 귀환한 75권의 목록을 프랑스 측과 맺은 약정서를 이유로 밝히지 않은 것도 굴욕 협상이라는 비판을 듣는다.
정병국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5년 단위 갱신 대여에 대해 “실질적인 환수라고 규정하고 싶다. 합의문은 양국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제적 관례가 있기 때문에 모두 고려한 가운데 이뤄졌다. 이것을 분명 실질적인 환수로 이해해 달라”고 강조했다.
정 장관은 또 “제4조는 의궤 외 다른 약탈 문화재를 환수할 수 없도록 제도적으로 봉쇄한 것 아니냐”는 질문에 “이는 외규장각 의궤에 한한다고 본다. 다른 문화재에 대해선 다른 방식으로 접근할 수 있다고 본다”고 답했다.
학계에서는 최선은 아니지만 차선이라는 의견이 많다. 외규장각 도서가 그나마 돌아온 것만 해도 다행이라는 것이다. 조광 고려대 한국사학과 명예교수는 “형식은 임대지만 대부분 국민들은 반환이라고 생각할 것”이라며 “미진한 부분은 있으나 현재 상황에서는 실천 가능성이 있는 적절한 대안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광형 선임기자, 김상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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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11-04-14 18: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