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작권 보호운동이 한창이다. 그러나 사진도 돈 내고 써야 한다고 말하면 본전 생각하는 사람이 꽤 많다. 음악이나 회화, 영화는 왠지 전문가의 창작물 같지만, 사진은 필요하면 직접 찍을 수도 있을 것 같은 확신 혹은 착각이 들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달력이나 포스터, 인터넷에서 만나는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는 회화일까 사진일까. 진품은 회화겠으나 루브르박물관 밖을 돌아다니는 모든 모나리자는 이 회화를 모작한 사진이다. 이 모작품은 인터넷에서 검색할 때만 공짜일 뿐 출력하거나 바탕화면에 깔아두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런 용도로 쓸 수 있는 고해상 데이터를 얻으려면 저작권료를 지불해야 하기 때문이다.
재미있게도 이 모작품의 저작권은 루브르박물관이 아니라 코르비스라는 에이전시가 갖고 있다. 1억만장의 사진과 일러스트의 디지털저작권을 보유한 세계 최대 저작권 회사다. 런던국립미술관이나 앤디워홀재단 소장품의 이미지는 물론 아인슈타인 관련 이미지, 할리우드 배우를 찍은 파파라치 사진 등도 모두 이곳에 저작권료를 내야만 사용할 수 있다. 이 어마어마한 이미지를 소유하고 있는 코르비스의 주인은 놀랍게도 컴퓨터 황제 빌 게이츠다.
그는 1989년 코르비스를 세울 당시, 미래에는 집집마다 디지털수상기가 움직이는 액자가 될 것이라 짐작했다. 누구도 가질 수 없는 모나리자 ‘그림’을 대신해 텔레비전이나 컴퓨터 화면에 모나리자 ‘사진’을 자연스레 띄워두는 세상이 오면, 전 세계 인터넷 접속자가 자신의 고객이 되리라는 확신이 있었다. 봉이 김선달이 대동강물을 팔 듯, 인터넷으로 이미지를 파는 빌 게이츠식 자판기 시나리오는 이런 상상에서 비롯됐다.
모든 종류의 인간 경험물을 디지털로 제작해 판매하겠다는 그의 차원 다른 상상력은 사진 산업의 판도도 바꿔놓았다. 일단 미술관과 도서관의 디지털저작권은 물론이고 사진 에이전시나 통신사를 통째로 사들여 모든 아카이브를 디지털로 전환했다. 1993년 석유재벌 폴 게티의 손자가 이끄는 게티이미지스란 후발 주자가 나서면서 경쟁이 가속화됐다. 그 과정에서 로버트 드와노나 윌리 호니스 등을 탄생시킨 역사적 사진 에이전시들도 대거 사라져버렸다. 생애 처음 잡지 표지를 장식한 젊은 사진가를 부둥켜안고 함께 기뻐할 수 있는 사람들이 소멸해버렸다는 뜻이기도 하다. 기존의 자그마한 사진 에이전시들이 사진가의 작업 방향을 함께 고민하며 성장하는 매니지먼트사라면, 코르비스나 게티이미지스는 일종의 유통회사다.
현재 2조원이 넘는 사진저작권 시장에서 게티이미지스는 코르비스의 세 배 이상 매출을 올리며 선두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코르비스는 천재의 취미였지만, 게티이미지스는 재벌가의 치밀한 사업이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코르비스는 저작권을 확보한 디지털이미지로 차원이 다른 사업을 펼쳐 내리란 포부를 버리지 않고 있다. 아마 빌 게이츠라면 가능도 할 것이다. 그러나 인간의 경험물을 디지털로 만들 때는 중요한 레시피를 꼭 챙겨야 한다. 바로 사람냄새다. 이게 빠지면 예술도 기술이 된다.
송수정 <사진기획자>
[송수정의 사진] ‘빌 선달’의 자판기
입력 2011-04-14 1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