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이강렬] 징벌적 등록금제

입력 2011-04-14 18:46
미 명문대인 하버드, 프린스턴, 예일, MIT에 성적우수 장학금이 있을까? 정답은 ‘없다’다. 언론들이 가끔 ‘하버드 4년 장학생’이란 내용의 보도를 하지만 오보다. 열거한 이 대학들에는 성적우수 또는 체육특기 장학생이 없다. 합격된 학생 가운데 가정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성적에 관계없이 학비를 지원해 준다. 하버드, 예일대의 경우 연소득 6만 달러 미만 가정 학생에게는 학자금 전액을 보조해 준다.

어려운 가정 학생에게 학비를 지원해 주는 제도를 ‘Need Based’ 시스템이라고 한다. 원서를 내면서 학자금 지원 요청을 하면 당락에 영향을 미치느냐에 따라 다시 당락에 영향을 안주는 ‘Need Blind’와 그 반대인 ‘Non Need Blind’로 나뉜다. 미국 최상위권 대학들은 대부분 자국 학생에게 ‘Need Blind’를 적용하지만 국제학생들에게는 ‘Non Need Blind’ 정책을 쓴다. 그러나 하버드, 프린스턴, 예일, MIT, 다트머스, 윌리엄스, 앰허스트, 미들버리 등 8개 학교는 국제학생에게도 ‘Need Blind’ 정책을 쓴다.

이 대학들이 ‘Need Based’ 정책을 쓸 수 있는 것은 막대한 학교 발전기금이 뒷받침해주고 있기 때문이다. 동문을 비롯해 유수 기업들이 매년 이 대학들에 막대한 기부금을 내놓고 있고, 학교도 전문가에게 기금 관리를 맡기고 있다. 발전기금 규모는 매우 커서 하버드 275억 달러, MIT 83억 달러, 예일 166억 달러, 프린스턴 143억 달러 등이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도 법에 따라 모든 재학생에게 과학인재 양성 차원에서 국민의 세금으로 장학금을 지급하고 있다. 서남표 총장은 공부를 못하는 학생에게까지 장학금을 줘야 하느냐며 ‘징벌적 등록금’제를 적용했고 상당한 공감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일부에서는 이 제도가 학생 4명의 연쇄 자살 원인이 됐다고 주장하며 폐지를 강력히 요구하고 있다.

이 사태를 계기로 카이스트도 하버드 등 미국 명문대학들처럼 ‘성적 우수 장학금’이 아닌 ‘학자금 보조’ 쪽으로의 전환을 생각해 볼 때다. 모두가 영재인 카이스트 학생들에게 성적우수 장학금을 주는 것은 무의미하다. 가정이 어려워 학자금 지원이 필요한 학생 모두에게 학비를 보조해 주는 ‘Need Based’ 시스템이 적절하다고 본다. 모든 대학들이 그러하듯 재학 중 성적이 계속 부진한 학생은 퇴출시키면 된다. 국가 지원을 받는 카이스트는 학교발전기금 규모와 관계없이 이 정책을 도입할 수 있다. 문제가 된 징벌적 등록금제의 대안이 될 수 있다고 본다.

이강렬 논설위원 ryo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