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문지방 넘기] ‘18년’과 ‘10년 하고도 8년’의 차이는 원어와 번역본으로 읽을 때의 오묘함

입력 2011-04-14 20:30

우리가 읽고 있는 한글성경은 일종의 번역본입니다. 본래 성경은 히브리어(구약)와 헬라어(신약)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은 성경을 원어로 읽을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을 원어로 읽다 보면 번역본을 읽을 때 느끼지 못했던 미묘한 점을 포착하기도 합니다. 누가복음 13장 10∼17절에 나오는, 예수님께서 18년 동안 허리 꼬부라진 여인을 고쳐주신 이야기도 그런 경우입니다.

예수님께서 여인을 고쳐주시자 회당장이 항의를 합니다. “날이 많이 있는데 왜 하필 안식일에 고쳐주느냐”는 것입니다. 안식일을 어긴 것에 대한 비판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에 대해 “18년 동안이나 사탄에게 매여 있던 아브라함의 딸을 매임에서 풀어주는 것이 합당하지 않느냐?”고 답변하십니다.

이 이야기에서 ‘18년 동안’이라는 말이 두 번 나옵니다. 11절과 16절입니다. 둘 다 ‘열여덟 해 동안’으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헬라어 원어를 보면 미세한 차이가 있습니다. 11절에서는 그냥 ‘에테(년) 데카옥토(18)’라고 하는 데 반해서 16절에서는 ‘이두(보라) 데카(10) 카이(그리고) 옥토(8) 에테(년)’라고 되어 있습니다. ‘18년’을 ‘10년과 8년’이라고 풀어쓰기 형식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런 느낌을 제대로 살려 번역한다면 ‘보라, 10년 하고도 8년 동안이나’ 정도가 될 것입니다. 이 대목을 그냥 ‘18년 동안’이라고 번역하면 싱겁기 짝이 없습니다.

고독의 시인 김현승은 ‘호올로’라는 표현을 즐겨 썼습니다. “호올로 되어 외로울 제 플라타너스 너는 그 길을 나와 같이 걸었다”(플라타너스), “가을에는 호올로 있게 하소서”(가을의 기도) ‘호올로’는 ‘홀로’를 늘여 뺀 말입니다. 이는 시인이 고독을 강조하기 위해 사용한 독특한 기법입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10년 하고도 8년 동안이나’도 마찬가지입니다. 18년이라는 기간이 얼마나 긴 세월이었던가를 강조하는 표현입니다. 게다가 앞에 ‘보라’라는 말까지 덧붙여서 강조를 되풀이하고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은 단 하루라도 빨리 그 매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여인의 심정을 잘 헤아리고 있습니다. 18년 동안이나 견뎌 왔는데 며칠을 더 못 참느냐고 공박하는 것은 남의 속을 모르는 한가한 소리입니다. 남 얘기라면 쉽게 할 수 있겠지요. 그러나 그 여인에게는 하루하루가 지옥 같은 나날이었습니다. ‘사탄의 매임’에서 벗어나기만을 손꼽아 기다리던 날들이 쌓이고 쌓여서 18년이라는 거대한 세월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동안 가슴에 맺힌 사연은 청천 하늘의 별보다 더 많고, 남 몰래 흘린 눈물은 요단강에 흐르는 물보다 더 많을지도 모릅니다. “병 고칠 날들이 많은데 하필 왜 안식일이냐? 며칠만 더 참았다가 평일에 고쳐도 되지 않느냐?” 하는 회당장의 말은 여인의 한 맺힌 심정을 너무도 몰라주는 무심한 말입니다.

‘보라, 10년 하고도 8년 동안이나’ 이 말씀에는 예수님의 긍휼의 마음이 오롯이 담겨 있습니다.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여인은 한마디 말이 없다가 고침 받은 후에야 비로소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 18년 동안 말을 잃고 살았던 여인의 입이 비로소 터진 것입니다.

오종윤 목사 (군산 대은교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