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茶 문화, 오해를 풀 시간… “억지·오역 넘치는 저서들… 실제 사료 입각해 바로잡아”

입력 2011-04-14 17:53

‘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 펴낸 정민 교수

그동안 ‘18세기 조선 지식인의 발견’이나 ‘한시미학산책’ ‘다산어록청상’ 등 전문 분야는 물론 수필집 ‘책 읽는 소리’ 등을 선보이며 문학을 넘어 문화사 전반으로 사유의 폭을 넓혀온 정민(51·사진) 한양대 국어국문학과 교수가 우리의 차(茶) 문화를 다룬 ‘새로 쓰는 조선의 차 문화’(김영사)를 펴냈다. 무려 752쪽에 걸쳐 차와 관련한 거의 모든 것을 담아낸 그는 13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오류투성이인 우리 차 문화를 올바르게 다시 쓰고 싶었다고 말했다.

“시중에 나와 있는 차 관련 저서를 보면 한심할 정도에요. 일본이 우리 차 문화를 베꼈다고 억지를 부리거나 한자를 제멋대로 번역한 엉터리 설명이 마치 교과서처럼 수십년간 이어지고 있어요. 이를 바로잡고 우리 차 문화를 재정립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차에 문외한이었던 정 교수가 차에 관심을 보인 것은 2006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다산 정약용 관련 책을 쓰기 위해 강진을 찾았다가 우연히 ‘동다기(東茶記·1790년대)’라는 책을 발견한 게 계기였다. ‘동다기’는 초의(1786∼1866)의 저서 ‘동다송(東茶頌·1830)’에 한 구절이 인용됐을 뿐 200년 이상 실물이 전하지 않던 전설적인 책이었다.

“‘동다기’는 그때까지 다산의 저술로 잘못 알려져 있었죠. 실제 확인해보니 다산이 지은 게 아니라 진도에 유배와 있던 이덕리의 저술이었어요. 어찌됐던 우리 차 문화를 다룬 매우 중요한 문서를 제가 발견했으니 제가 마무리 지어야 한다는 사명감을 갖게 됐습니다.”

정 교수는 이 일을 계기로 차 문화 연구에 깊이 빠져들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다서 ‘부풍향차보(扶風香茶譜·1750년대·이해운 저)’를 비롯해 각종 차 관련 저작 및 편지 등 수많은 사료를 잇달아 발굴하고 학계에 소개하며 우리 차 문화를 차근차근 다시 썼다. 자료를 잘 보여주지 않으려는 소장가들을 설득하는 작업이 가장 어려웠다. 뚝심을 발휘한 정 교수는 5년에 걸쳐 필요한 모든 사료를 섭렵하고 분석한 뒤 의미를 부여했다. 책에는 정 교수가 어렵게 얻은 300장에 이르는 자료 사진이 담겨 있는데, 그의 학자적 집념이 어느 정도인지 보여준다.

정 교수는 우리 차 역사에서 수십년째 답습돼온 오류들을 바로잡았다. 다산이 마신 차는 잎을 우려 마시는 ‘잎차’가 아니라 찻잎을 찧고 말리는 과정을 거친 ‘떡차’였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추사 김정희의 대표작 ‘명선’이나 ‘다반향초론’ 등에 얽힌 해묵은 논쟁들도 정리했다.

정 교수는 “신라와 고려 때 흥성했던 우리 차 문화는 조선 초기 멸절됐다가 18∼19세기 다산과 초의, 추사에 의해 다시 일어났다”며 “지금까지 민족주의적 감성에 호소하던 차 문화사의 문제점을 바로잡고 다산과 초의, 추사를 중심으로 실제 사료에 입각한 우리 차 문화의 원형을 알리게 돼 학자로서 뿌듯하다”고 말했다.

김상기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