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경제 조종하는 서양자본의 실체

입력 2011-04-14 17:51

‘자본전쟁’/랑셴핑/비아북

중국은 전통적으로 세계 야생 대두(大豆) 품종의 90% 이상을 보유하고 실질적으로 대두 품종을 통제해온 명실상부한 ‘콩의 왕국’이었다. 그러나 2000년 이후 상황이 급변했다. 중국 농업과학원 바이오기술연구소가 자신들을 방문한 미국의 종자회사 몬산토에게 대두 한 알을 선물로 준 게 화근이었다. 달랑 콩알 하나였지만 몬산토는 이를 적극 활용했다. 몬산토는 그 대두의 유전자를 분석한 끝에 고생산량 유전자와 병에 강한 유전자를 찾아냈다. 그리고는 곧바로 중국을 포함한 세계 101개 국가에 64개 항목을 특허 신청했다.

유전자 분석이나 특허에 무관심했던 중국은 이 유전자 변형 대두를 사용하려면 특허료를 지불해야 하는 황당한 상황에 빠졌다. 1995년 이전만 해도 대두 순수출국이었던 중국은 2000년에는 대두 연수입량이 1000만톤을 넘어서는 등 세계 최대 대두 수입국으로 전락했다. 이뿐이랴. 최근 10년간 중국의 대두 생산량은 세계 1위에서 4위로 급전직하했고 중국의 관련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했다.

‘자본전쟁’은 거대한 중국 경제를 조종하는 서양 자본의 실체를 낱낱이 고발한다. 원서는 홍콩 중문대 석좌교수로 평소 방송이나 집필을 통해 경제 성장의 거품에 취해 있는 중국 관료와 경제학자들을 향해 거침없는 쓴 소리를 쏟아내 ‘미스터 마우스’라는 별칭으로 유명한 랑셴핑(55)이 지난해 1월 펴낸 책이다.

랑셴핑은 책에서 대두나 채소와 같은 농산물을 시작으로 유통과 서비스업에 이르기까지 중국경제를 전방위로 옥죄는 서양자본의 실체와 ‘독점그룹’(세계적으로 독점적 지위를 갖는 다국적 기업들)의 뻔뻔하고 비열한 행태를 나열한다. 그는 레닌이 저서 ‘제국주의론’에서 “제국주의를 최대한 짤막하게 정의한다면 바로 자본주의의 독점 단계라 부를 수 있다”고 주장한 것을 근거로 현대 중국이 ‘신제국주의’의 위협과 공격에 시달리고 있다고 강조한다. 과거 제국주의가 전쟁을 통한 ‘영토 식민지’를 노렸다면 신제국주의는 자본과 독점그룹을 통한 ‘경제 식민지’를 만들려고 한다는 주장이다. 즉 급부상하는 중국경제를 ‘차이메리카’라며 칭송하는 이면에는 중국이라는 ‘마리오네트 인형’을 조종하는 서양자본과 독점그룹의 계략이 숨겨져 있다는 것이다.

저자는 1∼2부에서 마시는 물, 철광석, 면화, 대두, 옥수수 등의 사례를 통해 중국경제를 잠식하는 신제국주의의 면모를 들춘다. 아울러 1842년 난징조약을 맺은 청나라 수석대표 기선처럼 자국에 경제적 피해와 치욕을 안긴 정부 관리들과 이에 호응한 중국 학자들을 신랄히 비판한다.

“란저우시 정부의 협상 수석대표는 2007년 프랑스 회사 베올리아와 모욕적인 수도세 계약을 체결했다. 베올리아는 투자를 하지 않았다. 상수도관을 설치하지 않은 것은 물론이었다. 그럼에도 상수도 회사를 매입한 이듬해에 49% 수도요금 인상을 요구했다. 시민들은 베올리아 측에게 재무 데이터를 제공하라고 요구했다. 베올리아는 제국주의의 진면목을 드러냈다. 제멋대로 거절하는 동시에 가격을 인상하지 않으면 란저우시 정부를 법정에 세우겠다고 협박했다.”(12쪽)

3부에서는 코카콜라와 월마트를 거론하며 신제국주의가 어떻게 중국 기업을 장악하는지 살핀다. 4부에서는 소말리아와 코트디부아르의 사례를 들어 서양자본과 국가가 아프리카를 어떻게 궁지로 몰아넣는지 설명한다. 특히 4부의 9장에서는 ‘평화를 사랑하는 유서 깊은 나라’였던 소말리아가 1887년 영국에 점령된 이후 ‘해적의 소굴’로 전락하는 극적인 과정을 소개하며 이런 역사적 배경에는 영국과 미국을 위시한 서양의 수탈이 있었음을 밝힌다.

“소말리아에 무정부상태가 지속되면서 구미 각국 선박들이 소말리아 해역에 밀려들었다. 이들은 이 곳에서 두 가지 만행을 저질렀다. 이들이 무차별적으로 고기를 잡자 소말리아 어부들의 생존기반이 흔들렸다. 유럽 기업들은 화학물질과 핵폐기물을 소말리아 해역에 버리기 시작했다. 2005년에만 소말리아에서 300명 이상이 원인불명의 중독 증상에 시달리다 사망했다.”(203∼204쪽)

저자는 마지막 5부에서 신제국주의의 최전선에 미국과 오바마 정권이 있으며, 이들이 환율전쟁과 무역전쟁에 이어 원가전쟁까지 벌이며 중국을 지배하려 든다고 분석한다.

라셴핑의 주장은 간단하다. 서양자본과 독점연맹이 합종연횡을 반복하며 세계를 지배하는 ‘게임의 룰’을 만들고, 중국 뿐 아니라 한국 등 아시아 국가들과 남아메리카와 아프리카 신흥국들까지 경제적으로 자신들에게 의지하는 부속국가로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그가 내놓는 해법 또한 단순하다. 신제국주의의 본질을 명확히 이해하고 세계 경제의 일원으로 만족하기보단 세계 경제를 이끌어 가는 존재(룰 메이커)로 도약하기 위한 사고의 전환이 절실하다는 것이다.

저자가 특정 사건이나 이슈를 지나치게 단순화하고 이를 민족주의적·국수주의적 시각으로만 바라보려고 한 점은 아쉽다. 그렇다고 해도 저자의 주장은 세계화라는 허울을 쓴 신자유주의 열풍에 밀려 산업 전반을 외국자본에게 개방해온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홍순도 옮김.

김상기 기자 kitti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