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물가시대, 아파트 관리비도 찜찜하다. 관련 비리가 보도될 때면 찜찜함은 불안감으로 바뀐다. ‘공동전기세가 뭐기에 이리 많아?’ ‘승강기 유지에 왜 이만큼이나 돈이 들지?’ 의문은 꼬리를 물지만 고지서에 빼곡히 적힌 세부 내역은 쳐다만 봐도 머리가 지끈거린다. ‘뜨거운 물 적게 쓰고 전등 하나 더 끄자’고 결심하며 이달도 그냥 낸다. 하지만 수도료 전기료는 관리비의 20% 정도밖에 안 된다는 걸 아시는지.
공용관리비
김모(33)씨는 경기도 광명시 A아파트에 산다. 지난 2월 관리비는 ㎡당 1378원이었다. 전국 평균 1690원, 경기도 평균 2075원보다 싼 편이다. 하지만 관리비는 아파트 구조(복도식·계단식), 엘리베이터 유무, 난방 방식, 사용 에너지 종류, 노후 정도 등에 따라 차이가 크다. 관리비가 적정한지 보려면 비슷한 시기에 지은, 비슷한 규모의 다른 아파트와 비교하는 게 가장 좋다.
김씨는 인터넷에서 ‘공동주택관리정보시스템’(http://www.k-apt.net)을 찾았다. 전국 아파트 관리비를 비교 검색할 수 있는 사이트. 국토해양부가 2009년 9월부터 운영 중이다. 150세대 이상 아파트나 주상복합의 관리비는 모두 등록돼 있다. 지난해 10월부터는 공개 관리비 항목을 6개에서 23개로 확대했다. 연말엔 서울시도 비슷한 사이트를 개설한다. 서울시 관계자는 “회계장부를 통째로 공개하는 수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길 건너 B아파트 관리비 내역을 검색해 비교했다. 항목별 비교표가 뜬다(오른쪽 사진). 일반관리비, 경비비, 청소비, 소독비…. 낯선 용어들이 가득하다. 좌절하지 말자. 이제부터 시작이다.
공개되는 23개 항목은 크게 세 가지로 묶인다. 공용관리비, 개별사용료, 기타 항목. 개별사용료는 내가 쓴 만큼 나오는 돈이다. 기타 항목은 장기수선충당금, 안전진단실시비용, 잡수입 등인데 액수가 크지 않다. ‘우리 아파트 관리비가 비싼 게 아닐까?’ 의심된다면 공용관리비부터 따져야 한다. 공용관리비 항목은 일반관리비, 경비비, 청소비, 소독비, 승강기유지비, 지능형홈네트워크설비 유지비, 난방비, 급탕비, 수선유지비, 위탁관리수수료 등 10가지다.
공용관리비 총액은 김씨 아파트가 ㎡당 552원, B아파트가 518원. 34원의 차이는 경비비와 청소비 때문이었다.
경비비는 ㎡당 214원으로 147원인 B아파트보다 67원이나 비쌌다. 관리사무소는 “B아파트가 무인경비 장비를 많이 쓰고 사람을 적게 쓴다”고 설명했다. 아파트 관리 업체인 우리관리 최진희 팀장은 “아파트마다 사정이 달라 경비 방식도 다양하다. 싸다고 꼭 좋은 건 아니다”고 말했다. 찜찜하긴 하지만 안전을 위해서라니 일단 넘어가자.
두 아파트 청소는 같은 회사가 맡고 있다. 그런데도 B아파트는 ㎡당 91원으로 김씨 아파트보다 22원이나 싸다.
관리사무소에 따지자 “B아파트보다 투입된 인원이 많아서 그렇다”고 해명했다. 김씨 아파트는 35명, B아파트는 13명이 청소를 맡고 있었다. 김씨 아파트 단지 면적은 32만6314㎡, B아파트는 14만4994㎡. 계산해보니 사람을 더 써서 ㎡당 20원 정도 더 부담하는 게 맞다.
공용관리비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건 일반관리비다. 이 항목은 김씨 아파트가 B아파트보다 ㎡당 55원이나 싸다. 전국 평균보다 100원 이상 저렴하고, 주변 다른 아파트보다 50원가량 싸다. 관리사무소 측은 “관리소 직원이 19명뿐이다. 이런 규모라면 25명은 있어야 하는데 입찰가격을 맞추느라 그랬다”고 말했다. 관리비, 이만큼이라도 알고 나니 찜찜한 게 좀 가신다.
전기료 계약 방식
“공동전기료가 수상합니다. B아파트는 공동전기 31만2865kwH를 쓰고 3314만원을 냈는데 우리 아파트는 13만8929kwH만 썼는데도 3192만원입니다. 사용량은 절반도 안 되는데 금액 차이가 거의 없다니 이상하지 않나요?”
김씨 아파트 주민들의 인터넷 카페에 최근 이런 글이 올라왔다. 김씨는 곧장 한국전력에 전화를 걸었다.
“고객님 아파트는 단일계약이고, B아파트는 종합계약이라 그렇습니다.”
전기요금은 아파트와 한국전력이 맺는 계약의 종류에 따라 다르다. 종합계약과 단일계약이 있다. 종합계약은 개별 가구가 사용한 전기와 전체 단지에서 공동으로 쓴 전기(공용전기)를 구분한다. 개별 가구 전기는 주택용 저압요금, 공용전기는 일반용 요금이 적용된다. 일반용이 더 저렴해서 공용전기를 많이 쓰는 주상복합에 유리하다.
단일계약은 개별 가구 전기와 공용전기에 일괄적으로 주택용 고압요금을 매긴다. 주택용 저압요금보다 조금 싸지만 일반용 요금보단 비싸다. 각 가정 전기는 싸게, 공용전기는 비싸게 구입하는 셈이다. 공용전기를 많이 쓰지 않는 곳에 적합하다.
엘리베이터 운행 등 공용전기 비율이 전체 아파트 전력 사용량의 20%를 넘지 않으면 단일계약 방식이 유리하고, 반대라면 종합계약이 낫다.
“홈페이지에서 다른 요금제로 가정해 시뮬레이션해 보실 수 있습니다.”
김씨는 상담원의 도움을 받아 시뮬레이션을 해봤다. A아파트 2월 전기요금 총액은 9008만8442원. 종합계약으로 바꿔보니 7910만4388원이다. 1000만원 이상 차이가 벌어진다.
관리사무소 측 설명은 이랬다.
“전기 계약은 1년 단위로 이뤄지는데, 어떤 계약이 유리한지는 계절에 따라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1년 정도 추이를 보고 결정하는 게 정확합니다. 주민 동의도 필요합니다.”
김씨는 카페에 글을 남겼다.
“내년 전기 계약은 종합계약으로 바꿔봅시다.”
돈 먹는 낡은 아파트
주부 박은미(35·가명)씨는 지난달 20평대에서 30평대 아파트로 이사했다. 기분이 좋은 것도 잠시, 관리비 고지서를 받고 깜짝 놀랐다. 관리비가 10만원 이상 늘었다. 넓어졌으니 관리비가 늘겠거니 예상은 했지만 이 정도일 줄은 몰랐다.
가장 큰 요인은 경비비. 새로 지은 예전 아파트엔 입구와 출구 두 곳에만 경비원이 있었다. 동마다 암호를 눌러야 열리는 자동문과 CCTV가 있었다. 이사 온 아파트는 80년대 지어져 그런 시설이 없다. 대신 동마다 경비원이 1명씩 있다.
사람을 쓰면 비싸다. 예전 아파트는 ㎡당 경비비가 140원이었는데 이번 아파트는 421원이다. 라인마다 경비원이 있는 인근 아파트는 경비비가 ㎡당 861원이나 된다. 이래서 요즘 짓는 아파트들은 무인경비 시스템을 도입한다.
난방비도 차이가 크다. 아파트 난방은 중앙·지역·개별난방으로 나뉜다. 중앙난방은 아파트 관리실에서 대형 산업용 보일러로 물을 데워 각 세대까지 공급한다. 지역난방은 열병합발전소에서 난방수를 보내주고, 개별난방은 세대마다 보일러를 두는 것이다. 중앙난방이 가장 비싸다. 개별난방은 지역난방보다 10∼15% 가격이 높다.
박씨의 옛 아파트나 지금 아파트 모두 지역난방이다. 하지만 지금 아파트는 과거 중앙난방을 하다가 지역난방으로 전환한 탓에 각 세대에 난방 조절기가 없다. 난방비를 아끼려 해도 그럴 수 없는 구조다.
한국지역난방공사 관계자는 “90년대 이후 지은 아파트 중 지역난방을 택한 곳은 세대마다 온도조절기가 있다. 그 전에 지은 아파트 중 중앙난방을 하다 지역난방으로 바꾼 곳엔 조절기가 없다. 지역난방을 공급받는 120만 세대 중 10% 정도가 그렇다”고 말했다.
관리비 절약 팁(Tip)
첫째, 법에 정해진 항목 외에는 관리비로 걷을 수 없다. 주택법은 23가지 항목만 관리비로 규정하고 있다. 공용관리비 10가지, 개별사용료 10가지(전기료, 수도료, 가스사용료, 지역난방비, 급탕비, 정화조오물수수료, 생활폐기물수수료, 공동주택단지 보험료, 입주자대표회의 운영비, 선거관리위원회 운영비)와 기타 항목 3가지(안전진단실시비, 장기수선충당금, 잡수입)다. 간혹 부녀회비나 적십자회비를 관리비 명목으로 걷는데, 불법이다. TV수신료는 걷을 수 있다. 부당한 항목이 없나 따져보자.
둘째, 주민들이 공동으로 낮시간대 주차장 개방, 알뜰시장 유치, 승강기 게시판 광고 유치 등을 한다면 그 수익은 아파트 관리에 쓰는 ‘잡수입’으로 처리된다. 이게 많으면 세대별 관리비도 줄어들 여지가 생긴다.
셋째, 새로 지은 아파트라면 시공사의 의무 하자보수 기간을 최대한 활용하는 게 좋다. 이때 무상 수선을 받아두면 나중에 주민들이 부담할 수선유지비가 줄어들 수 있다.
김원철 기자 wonchul@kmib.co.kr
아파트 관리비 나 몰래 새는 돈 없을까… 고지서 읽기&절약 요령
입력 2011-04-14 1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