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몰지에 예술을 담다… 캔버스가 된 포천시 교동마을

입력 2011-04-14 18:05

예술가 여섯 명이 수몰지역으로 몰려갔다. 석 달간 마을회관에 살면서 주민들과 밥 해먹고 술 마시고 밤새우며 얘기했다.

그리곤 아름답고 재미있는 무언가를 함께 만들었다.

캔버스와 갤러리를 벗어난 작가들이 집단이주를 앞둔 주민들과 몸을 섞은 곳.

경기 포천시 관인면 중1리 교동마을 이야기다.

지난 12일 서울에서 북쪽으로 3시간 가까이 차를 몰아 교동마을에 도착했다. 휴전선에서 불과 23㎞ 떨어진 곳이다. 전국을 휩쓴 구제역 때문에 지난달까지도 마을 출입이 자유롭지 않았다. 입구에 들어서니 부서진 가옥 여러 채가 눈에 들어왔다. 봄철 제때 물을 대지 않은 논밭에서는 뽀얀 흙먼지가 인다. 금세 입안이 까끌까끌해졌다.

6·25전쟁 때 초토화됐던 교동마을은 전쟁이 끝나자 다시 집을 짓고, 길을 내고, 논밭을 일궈 지금의 모습이 됐다. 그러나 휴전 후 60년을 채우지 못하고 지금보다 고도가 20m쯤 높은 땅으로 곧 이주해야 한다. 한탄강 하류에 2014년까지 홍수조절용 댐이 완공된다. 당장 물이 들어오진 않지만 한여름 집중호우가 내리면 이곳까지 잠기는 ‘수몰 예정지’다.

주민이 떠나면 빈 집은 한국수자원공사가 접수해 허물어 버린다. 총 32가구 가운데 3분의 1 이상이 보상금 받고 떠났다. 산 중턱으로 집단 이주키로 한 19가구만 지금 이곳을 지키고 있다.

지난해 8월 순수창작집단 ‘스폰치’의 예술가들이 마을에 들어왔다. 공공예술을 추구하는 ‘문화살롱 공’의 박이창식(47) 대표가 기획한 작가 그룹. 스펀지처럼 작가들이 현실에 참여해 뭔가 흡수하고 충격을 완화하다가 꽉 짜버린 후에는 본래 모습으로 돌아가자는 취지라고 한다.

DMZ 생태사진가 김경훈, 설치미술가 하정수, 조각가 나규환, 미디어 설치작가 박준식, 영상작가 박상덕씨가 동참했다. 박 대표는 “수몰 지구에서 사라지는 것들을 예술가의 시각에서 담아보고 싶었다”고 했다. 또 “예술을 통해 댐 건설로 상처받은 주민들의 마음을 위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예술가들의 첫 작업은 신문 만들기였다. 문화는 곧 글로써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라 생각했고, 이야기를 풀어줄 수단으로 신문만큼 좋은 게 없다고 느꼈다. 제호는 교동신보(蛟洞新報). 도롱뇽(蛟)이 많이 살던 청정 1급수 마을이란 뜻을 제호에 담았다.

박 대표가 편집국장을 맡아 배면을 담당했고 사설을 썼다. 사설 제목은 ‘생명지역주의 시대의 매너’였다. 조각가 나규환씨는 ‘굿모닝! 교동’이란 네 컷 만화를 그려 2면 머리에 올렸다. 사진을 담당한 박준식씨는 아침 햇발 속에 등교 버스 기다리는 아이들을 찍었고, 생태사진가 김경훈씨는 ‘교동의 꽃 이야기’를 연재했다. 슈퍼 고구마를 키워낸 주민 인터뷰, 마을회관에서 상영될 2006 베니스영화제 황금사자상 수상작 ‘스틸 라이프’ 기사 등이 A4 용지 8쪽 분량의 신문에 빼곡히 담겼다.

신문을 통해 마을문화기록관 ‘교동사람들’ 현판식도 소개했다. 마을회관 삼거리의 빈 집을 포클레인이 찍어 내리기 직전, 작가들은 수자원공사와 주민들에게 이 집 한 채만 남겨달라고 부탁했다. 방 3개, 부엌 1개, 거실 1개가 남은 그 공간을 작가들은 갤러리로 꾸몄다.

김경훈씨는 남은 19가구의 집을 모두 훑어 가구마다 대표 야생화를 지정하고 초정밀 접사 사진을 찍었다. 김윤희씨 댁은 벌노랑이, 윤원용씨 집은 사랑초, 뭐 이런 식이다. 한쪽 벽 전체에 마을 지도를 그리고 그 위에 각 집을 대표하는 꽃 사진을 붙였다. 개와 고양이, 또 키우던 소의 모습도 담았다.

하정수 작가는 한 달 넘게 철판과 씨름했다. 한 땀 한 땀 용접해 나뭇가지 모양을 만든 뒤 안방 창 전체에 창살처럼 붙였다. 주민들이 그 창을 통해 마을을 굽어보는 지장산의 산세를 느낄 수 있도록 했다. 하씨는 작가노트에 “사실 창은 예술이란 행위를 하지 않아도 그 자체로 아름답다”고 썼다.

거실 바닥에는 동네 아이들이 새로 이주할 마을이 이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담아 직접 아크릴 물감으로 상상마을 그림을 그렸다. 부엌은 주민들의 발자취가 담긴 소품들이 전시돼 ‘발방’으로 명명했고, 건넌방은 손때 묻은 농기구를 모아 ‘손방’으로 꾸몄다.

빈 집 갤러리의 현판 제작은 나규환씨 몫이었다. 버려진 ‘축 발전’ 액자 위에 채집한 창문틀을 덧대고 페인트로 ‘교동사람’이라고 썼다. 지켜보던 주민들이 뒤에 ‘들’자를 추가하자고 의견을 냈다. 작가들은 별도의 목판에 노란 꽃 모양 도장을 찍어 ‘들’자를 완성했다.

처음엔 “무슨 봉사활동 왔나” 하고 심드렁하던 주민들이 달라지기 시작했다. 예술 한다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벽화나 그리고 조각 몇 개 남기고 떠날 줄 알았는데 추석연휴마저 마을에서 같이 지내자 달리보기 시작했다.

수몰지구 지정 직전까지 소를 키우던 이수호(67)씨는 작가들과 함께 싸리문을 만들었다. 자식 같은 소를 처분하고 적적하던 차였다. 교동에서 나고 자랄 때 아버지가 만드는 모습을 어깨 너머로 지켜보던 기억을 되살렸다. 싸리나무를 베어 하루 동안 말린 뒤 땅에 꽂고 칡으로 엮었다. 기둥은 소나무로 했다. 싸리문은 반쯤 열어 놓았다.

이 작품은 빈집을 갤러리로 만든 마을문화기록관 ‘교동사람들’ 입구에 당당히 들어섰다. 담벼락 부분은 과감히 생략하고 길 위에 문을 놓는 대담함을 발휘했다. 작가들은 ‘열린 문’이라고 이름 붙였다. 주변에서 ‘교동마을이 낳은 최고의 설치미술가’라고 추어올린다. 수줍어하는 이씨 대신 부인 양재순(64)씨가 “돋보이게 돼서 자꾸 의도가 뭐냐고 묻는데 그냥 옛것을 좋게 보자는 생각”이라고 말했다.

마을 이주대책위원장을 맡은 이기종(54)씨는 “많이 배웠다”고 했다. 무뚝뚝한 이씨에게 “예술가들과 함께 살아보니 어떠냐”는 질문을 두어 번 던진 후에야 들은 대답이다. 그는 “산에 가도 시골 사람들은 산에 뭐가 있는지 신경 안 쓰잖아요. (작가들은) 야생화와 식물 하나하나 관심 쏟는데. 우리가 배워야겠더라고” 했다.

그는 쌀농사만 40년 넘게 지었고, 고추 감자 배추 등 하우스 작물도 재배했다. 한쪽 다리가 불편해도 땅을 지켰는데, 이젠 오히려 홀가분하다. 농토를 전부 수자원공사에 내줬지만 새로 들어설 마을에서 클라인 가르텔(체류형 농촌마을)을 주민들과 함께 운영할 계획이다.

강석진(43)씨는 구제역 살처분의 쓰나미를 뚫고 자신의 소 22두를 지켰다. 축사에 계속 불을 피워 온도를 높이고 연기를 쐬게 하는 방법을 썼다. 그가 세 가지 마을 자랑을 늘어놨다. “구제역과 싸워 소를 지켰고, 지난해에만 우리 마을에 아기 3명이 태어났고, 예술가들과 함께 했죠. 복이에요. 복.”

예술가들의 핵심 과제는 ‘도롱이집 이주 프로젝트’다. 도롱이는 도롱뇽을 발음하기 편하게 만든 말이다. 도롱이집은 마을에 남은 최고령자 이수하(74) 김영자(71) 부부의 집이다. 노부부가 신혼시절이던 1950년대 말 직접 지었다. ‘ㄱ’자 형태 한옥으로 50년 넘게 그 자리를 지켰다. 딱 하나, 1970년대 새마을운동 때 지붕을 이엉에서 슬레이트로 바꿨다. 집도 부부를 닮아 마을에서 제일 오래됐다.

“여기서 5남매를 키웠어. 10년 전 막내아들 장가보낼 때 막내며느리가 이런 데서 잘 수 있겠나 해서 이 집 옆에 조립식 방 한 칸짜리를 새로 지었지. 왜 그때 이걸 헐지 않았냐고? 일루 와봐. 여기 이 대청마루. 이 마루를 없앨 수 없겠더라고. 여름에 말도 못하게 시원했어. 아버지 사촌도 서넛인데, 모두 여기 와서 자려고 했어. 모기? 쑥으로 불 피우면 하나도 못 덤벼.”

주민들은 새로 이전할 부지에 자신들의 땅을 한 평씩 내놓기로 했다. 그렇게 마련될 공공 부지에는 바로 이 노부부 집이 복원될 예정이다. 작가들의 제안으로 결정된 일이다. 그 안에는 지금 빈 집 갤러리에 모여 있는 주민과 작가의 작품들이 고스란히 옮겨지게 된다.

도롱이집 이주 프로젝트는 3개년 계획이다. 산 중턱에 새 마을이 들어서는 2012년까지 진행된다. 마을은 기존 19가구 이외에 귀농과 귀촌을 희망한 7가구를 더 받아들여 26가구의 모습으로 다시 태어난다.

올해는 5월부터 작가들의 천막이 마을에 재입성한다. 지난해에는 작가들이 마을회관에서 먹고 잤지만, 주민들에게 조금이라도 부담이 되지 말자는 뜻에서 직접 천막을 가져오기로 했다. 또 교동마을뿐 아니라 강을 따라 다른 수몰 예정지 마을에도 천막을 가지고 들어가는 ‘문화 유목민’ 활동을 해보려 한다.

그림 그려줄 화가와 스토리 풀어줄 소설가가 추가로 투입된다. 문화와 예술이 흐르는 공동체, 커뮤니티 아트를 위해 모인 작가들의 계획은 성공할 수 있을까. 박 대표는 “‘예술은 무슨…’ 하던 주민들과 간격을 줄이면서 ‘나도 한번 해볼까’라는 반응까지, 이제 첫발을 내디뎠다”고 말했다.

포천=글 우성규 기자, 사진 구성찬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