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출된 은행 고객정보로 공인인증서를 발급받아 수억원을 인출한 신종 사기 사건이 적발됐다. 현대캐피탈 해킹사건으로 개인정보 유출에 관한 국민들의 불안감이 커진 가운데 모방범죄가 속출할 것으로 우려된다.
경찰청 사이버테러대응센터는 13일 평소 인터넷뱅킹을 쓰지 않는 재력가들의 금융정보와 위조 신분증을 이용해 4억2000여만원을 가로챈 혐의(전자금융거래법 위반 등)로 전모(51)씨 등 3명을 구속하고 1명을 불구속 입건했다.
부산에 사는 전씨는 올해 초 자신의 형(53)과 딸(25), 구치소 동기 윤모(60)씨, 동네 기원에서 만난 조모(60)씨와 의기투합해 범행을 계획했다. 전씨는 윤씨를 통해 금융정보 브로커로부터 충남지역 재력가 이모(61)씨의 은행 계좌번호와 비밀번호, 주민등록번호 등 금융정보를 300만원에 구입했다. 이어 이씨의 인적사항에 조씨의 사진을 붙인 주민등록증을 위조 브로커에게 150만원을 주고 만들었다.
지난 2월 1일 전씨의 지시를 받은 조씨는 울산의 한 은행을 찾아가 이씨 명의로 신규계좌를 개설하면서 3억여원이 예치돼 있던 기존 계좌에 대한 인터넷뱅킹도 신청했다. 은행 창구 직원은 조씨가 내민 이씨 명의의 주민등록증을 의심하지 않았다. 전씨는 곧바로 딸에게 해당 은행 인터넷뱅킹으로 이씨 명의의 공인인증서를 발급받도록 했고 기존 계좌에 있던 3억여원을 새 계좌로 이체했다. 이어 은행 지점을 돌며 돈을 인출해 갔다.
피해자 이씨는 다음날인 2일 손자·손녀에게 줄 세뱃돈을 인출하려 은행에 갔다가 계좌에 돈이 한 푼도 없는 것을 알고 경찰에 신고했다.
경찰은 수사 과정에서 전씨 일당이 지난 1월 24일 전남 순천에서 같은 수법으로 한 재력가의 통장에서 1억2000여만원을 빼돌린 사실을 파악했다. 이들은 2월 말엔 대구의 한 은행에서 VIP 고객 명의로 새 계좌를 만들려다 신분확인 절차가 까다로워 중도 포기하기도 했다. 경찰은 은행 CCTV를 추적해 이들을 검거했다.
경찰은 전씨 일당에게 은행 VIP 고객정보를 넘긴 브로커들을 추적하고 있다. 브로커들이 어떤 방식으로 금융정보를 확보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경찰은 해킹이나 은행 내부자의 소행 등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수사 중이다.
경찰 관계자는 “인터넷뱅킹을 모르는 노년의 재력가를 노린 신종 사기”라며 “인터넷뱅킹 신청 시 신분확인 절차가 취약하다는 점을 금융감독원에 알려 추가 피해를 막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천지우 기자 mogul@kmib.co.kr
인터넷뱅킹 안하는 VIP 노린 신종사기… 새나간 고객정보로 인증서 발급 4억 빼가
입력 2011-04-13 18: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