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최찬영 (9) 종탑 바로 아랫방서 도마뱀과 함께 숙식

입력 2011-04-13 19:00

비행기로 홍콩까지 가 거기서 방콕까지는 다시 배를 타고 가야 했다. 공항에는 박형룡 박사, 최기은 김동수 목사를 비롯해 교단 지도자 및 총회 선교부 임원, 영락교회 교인 등 수많은 사람들이 나와 기쁨으로 우리의 장도를 축하하고 기도해주었다. 당시 아내는 임신한 상태라 몸이 무거웠다.
나는 아내의 한 손을 꼭 잡았다. 그리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찬송가를 불렀다. “나의 갈 길 모르니 주여 인도하소서. 어디 가야 좋을지 나를 인도하소서. …아기 같이 어리니 나를 도와주소서….”

마침내 선교지 태국 방콕에 도착했다. 태국 교회에서 우리가 거처할 집을 준비해두었다는 소식을 들은 터라 마음이 놓였다. 태국 교회에서는 내가 중국에서 어린 시절을 지냈다는 것을 알고 중국 사람들과 사역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중국인 교회 내 작은 방을 마련해주었다.

그 교회에는 큰 종탑이 세워져 있었다. 그 바로 밑에 있는 작은 방이 우리의 처소였다. 방에 들어섰을 때 열대 도마뱀들이 천장과 벽을 마구 기어다니고 있었다. 생전 처음 보는 광경이라 소스라치게 놀랐다. 무더운 밤에 잠을 자다가 차가운 도마뱀이 내 맨살 위에 떨어져 놀라 깨기 일쑤였다. 설상가상으로 열대 기후에 적응한다는 게 쉽지 않았다. 모기가 많아 모기장을 치면 더위에 숨이 막힐 듯했다. 종탑 밑 방 생활이 익숙해져갔지만 아내에게는 점점 어려움이 더해갔다. 임신부라 자주 화장실을 가야 하는데 화장실이 방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밤마다 서너 번씩 서로의 손을 잡고 종탑 3층에서 내려와 어두컴컴한 길을 따라 교회 구석진 곳에 있는 화장실에 가야만 했다.

아내와 나는 태국에 도착한 뒤 현지어 공부를 시작했다. 언어를 배우러 다닐 때는 ‘쌈로’라는 세발자전거를 타고 가야 했다. 외국 사람들과 함께 현지어를 공부하면서 특별히 기억나는 게 있다.

어느 날 ‘∼을 원한다. ∼을 하고 싶다’라는 문장을 배우게 됐다. 태국말로 ‘∼을 원한다’는 동사가 아주 재미있다. ‘또옹깐’으로 한국어 ‘똥깐’과 비슷했다. 그날 공부를 시작할 때부터 끝날 때까지 모두가 ‘똥깐’으로 말해 우리 부부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외국 학생들은 우리가 왜 그렇게 웃음을 참지 못하고 싱글벙글하는지 어리둥절해했다.

요즘에는 선교사로 떠나기 전 선교지에 대한 정보는 물론 기초적인 언어 수업을 받기도 하지만 우리 부부가 떠날 때만 해도 그 같은 것은 상상할 수도 없었다. 이 때문에 현지 문화에 대한 이해가 부족해 본의 아니게 많은 실수를 했다. 태국은 같은 동양권이지만 문화적으로 다른 게 많았다.

한번은 아내와 전차를 타고 외출을 했다. 차에 올라타 보니 다행히 빈 자리가 보였다. 몸이 무거운 아내를 그 자리에 앉게 했다. 그런데 갑자기 여러 사람이 우르르 몰려와 아내를 억지로 일으켜 세우더니 다른 자리로 데려갔다. 우리는 영문을 몰라 당황스러웠다.

나중에 안 일이지만 태국에서는 여자, 더욱이 임신한 여자는 노란 승복을 입은 스님 옆에 절대 앉지 못하게 돼 있다. 여자의 살이 스님에게 닿으면 큰일이 난다는 것이다. 스님 옆자리가 비어 있다고 임신한 여자가 넙죽 앉았으니. 아무도 그런 문화적 풍습을 설명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전혀 모르고 한 실수였다.

태국에서는 어린 아이들이 아무리 귀여워도 머리를 쓰다듬어서는 안 된다. 태국인은 머리를 신성하게 여겨 아무도 만져서는 안 된다고 믿고 있다. 따라서 머리를 만진다는 것은 매우 불경한 일이다.

정리=함태경 기자 zhuanji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