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사건 정당방위 인정 한달… 달라졌나
경찰은 폭력사건이 일어났을 때 무조건 양쪽 모두를 입건하는 관행에 문제가 있다고 보고 정당방위가 인정되면 입건하지 않는다는 지침을 지난달 7일부터 시행했다. 한 달이 지난 지금, 정당방위로 처리된 사례는 이전보다 늘었지만 일선에선 새 지침을 적용하기가 어려워 ‘그냥 하던 대로 하겠다’는 곳이 여전히 많다.
경찰청 수사국은 지난달 정당방위 인정 사례가 66건(서울지역 14건)으로, 지침 시행 전인 1월 17건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고 12일 밝혔다. 경찰청은 자신을 폭행하는 남자친구의 얼굴을 할퀴며 맞대응한 여성을 불입건한 서울 성동경찰서 한양지구대와 같은 모범 사례를 매주 공개하며 지침 적용을 독려 중이다.
하지만 지침이 아직 정착되지 않아 정황이 비슷한데 처리 결과가 상반된 경우도 있다. 지난달 부산 서부서 구덕지구대는 길거리에서 상대가 이유 없이 얼굴을 때리자 똑같이 얼굴을 때리며 맞선 행인에 대해 정당방위로 보고 입건하지 않았다.
반면 지난 8일 서울 서초서는 도움을 주려는 이웃을 때린 이모(45)씨를 불구속 입건하면서 이웃 강모(28)씨도 멱살을 잡았다는 이유로 함께 입건했다. 만취 상태였던 이씨는 택시기사에게 “집이 어딘지 기억이 안 난다”고 하자 기사는 지나가던 강씨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강씨가 다가오자 이씨는 갑자기 차에서 내려 강씨 얼굴을 주먹으로 세 차례 때렸다. 강씨는 이에 대항해 이씨의 멱살을 잡았다.
강씨는 “이씨가 미친 사람처럼 달려들었다”며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쌍방 입건됐다. 서초서 관계자는 “피할 수 있었는데도 똑같이 대응해서 그런 것”이라며 “신체 접촉이 이뤄지면 일단 폭행이기 때문에 쌍방 입건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서울 주요 경찰서와 지구대, 파출소를 둘러본 결과 “한쪽 말만 듣고 정당방위로 처리해줬다가는 골치 아파지기 때문에 지침 적용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반응이 많았다. CCTV나 목격자 증언과 같은 확실한 물증이 없는 경우 당사자 진술만 듣고 정당방위 여부를 가리기는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종암서 소속 지구대 관계자는 “한쪽만 인정하면 다른 쪽에서 진정을 넣어 복잡해지기 때문에 정당방위를 인정하기가 부담스럽다”고 털어놨다. 수서서 경찰관도 “누가 책임지려 하겠느냐”고 반문했다.
천지우 정부경 유동근 기자
새 지침 알쏭달쏭… 일선 경찰 “그냥 하던대로”
입력 2011-04-12 18:3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