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발 살려달라”… 그바그보, 마지막 순간까지 비굴했다

입력 2011-04-12 21:58
로랑 그바그보 전 코트디부아르 대통령의 마지막은 독재자의 처량한 말로를 여실히 보여줬다.

대통령 궁의 어두운 지하 벙커에서 일주일을 버티던 그는 11일(현지시간) 알라산 와타라 대통령 당선자 측 군대가 벙커 안으로 들어와 총을 겨누면서 종국을 맞았다. 그바그보가 “나를 죽이지 말라”고 소리쳤다고 AP통신 등 외신들이 보도했다. 10년 통치를 마감하면서 그바그보는 삶을 구걸하는 신세가 됐다.

와타라 측 군인이 그바그보를 손바닥으로 때리긴 했지만 별다른 폭력은 없었다고 AP는 전했다. 하지만 그 ‘한방’은 그바그보의 자존심을 짓뭉개기에 충분했다. 그바그보는 와타라 측 군인 중 일부에게 사살될 것을 우려해 방탄조끼를 입은 채 이송됐다.

체포 사실이 보도된 이후 그바그보의 모습이 와타라 측 방송 TCI에서 방영됐다. 흰색 러닝셔츠 바람으로 낯선 이들 사이에 둘러싸인 그바그보는 겁에 질린 듯한 표정이었다고 영국 일간 인디펜던트가 전했다. 그바그보는 속옷을 입은 채 수건으로 몸을 닦고 셔츠를 갈아입었다. 결사항전을 외치던 그는 적의 카메라 앞에서 종전(終戰) 촉구 발언을 하는 등 굴욕을 당하기도 했다.

국제사회는 일제히 그바그보 체포를 환영했다. 동시에 와타라 측에 보복금지를 당부했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은 성명을 통해 “불법적 권력 종식을 환영한다. 민주주의에 대한 코트디부아르 국민의 의지가 승리했다”라고 평가했다.

이날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지난 3월 말 이후 현재까지 코트디부아르 서부에서 536명이 살해됐으며, 사망자 수가 더 늘어날 것이라고 밝혔다.

앞서 국제적십자회는 지난달 말 내전 때문에 이곳에서만 1000여명이 사망했다고 밝힌 바 있다.

라비나 샴다사니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 대변인은 “코트디부아르의 국민적 화해를 위해 책임 소재를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내전은 끝났지만 와타라 대통령 당선자의 문제는 지금부터다. 북부 이슬람 세력의 지지를 받은 와타라는 그바그보를 지지하는 남부 가톨릭 세력을 품어야만 나라를 안정시킬 수 있다.

경제재건이 계획대로 되지 않을 경우 민심이반도 걷잡을 수 없을 것으로 우려된다. 외세의 입김도 만만치 않을 것으로 보인다.

김준엽 기자 snoop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