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조미자] 자전거로 달리는 여자

입력 2011-04-12 17:52

산책을 하다 보니 길옆으로 조그만 자전거가 세워져 있다. 그 자전거는 겨우내 배수로에 빠져 있었다. 아마도 인심 좋은 사람이 눈이 녹자 잃어버린 아이에게 찾아가라고 꺼내놓은 모양이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자전거 통근을 했다. 호리호리한 키에 베이지색 바바리를 펄럭이며 자전거를 타고 다녔다. 나는 가끔씩 장독대에 올라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았다. 아버지의 자전거 바퀴살에서는 주황색과 보라색이 섞인 무지개가 생겼다. 석양에 반사된 수많은 빛 방울은 아버지가 바퀴를 돌릴 때마다 구슬처럼 매달려갔다.

가끔씩 당신은 좁은 짐판에 나를 태웠다. 엉덩이가 짐판의 쇠에 배겼지만 부끄러워서 아프다는 소리도 못했다. 아버지의 허리를 잡은 내 손에서는 축축한 땀이 났었다. 중년이 넘은 아버지는 다른 여자를 만나 어머니의 속을 태우곤 했다. 그러면 어머니는 자전거 바퀴에 구멍을 내 멀리 가지 못하게 했다. 그걸 안 아버지는 어머니와 자주 다투었다. 그 때문이었을까. 자전거는 그 뒤 내 기억 속에서 멀어져갔다.

이십대 초반이었을까. 한 선배가 자전거를 가르쳐주겠다며 운동장에서 뒤를 밀어주었다. 중심을 잃지 말라고 그가 소리쳤지만 나는 중심이 무언지 몰랐다. 그는 땀이 범벅이 된 얼굴로 이렇게 자전거를 못 타는 여자는 처음이라고 했다. 보통의 여자들은 이쯤 되어 살며시 손을 떼면 혼자 갈 수 있다는 거였다. 나는 그때 자전거를 영원히 못 탈지 모른다는 생각을 처음 했다.

그러구러 이십년이 흘러 후배가 개인전에 초청을 했다. 산촌의 자연과 어린아이들의 순진무구가 그녀의 작품 세계였다. 나는 도록을 받아들고 그림을 점찍었다. 원피스를 입은 소녀가 미루나무가 서있는 강변을 자전거를 타고 가는 그림이었다. 하늘에는 흰 물새가 소녀와 함께 날고 있었다. 그러나 그 그림은 ‘예약’이라고 표시돼 있었다. 다른 그림은 눈길도 두지 않은 채 나왔다. 은행잎이 수북한 인사동 거리에서 나는 자전거를 영원히 가질 수 없다고 생각했다.

그 후 남이섬이 가까운 곳으로 발령을 받았다. 남이섬에는 섬 바깥쪽으로 자전거도로를 만들어 강변을 보며 달리도록 해놓았다. 섬 한가운데 메타쉐콰이어 길로도 통하게 해놓았다. 나는 남녀가 함께 자전거를 타고 달리는 모습을 부러운 눈으로만 지켜보았다. 그러고는 돌아와 집 옆의 공원 자전거 대여소에 가서 초등학생이 탈 만한 자전거를 빌렸다. 조금 가려고 하면 쓰러지고, 다시 일어나 타려고 하면 발판에 발이 미끄러졌다. 다리에 상처가 낙서처럼 그어지고 자주색 노란색 멍이 꽃처럼 피어났다. 일주일쯤 됐을 때야 나는 비틀거리며 간신히 혼자 탈 수 있게 됐다.

휘청휘청 살아온 길 이제는 똑바로 가는 법도 익혀야겠지만, 더 나아가 내 자전거에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들을 태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으랴. 나는 남이섬의 노을진 강변을 배경으로 단풍든 메타쉐콰이어 숲을 자전거로 달리는 여자를 그려본다. 자전거를 탄 아버지 등에 얼굴을 기대던 여자아이가 어디선가 나를 지켜볼 것만 같다.

조미자 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