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일어난 원전 사고가 독일 사회를 강타했다. 독일 주요 도시에서 20만명의 시민이 참가하는 반핵 시위가 벌어졌고, 최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 선거에서는 1953년 이후 58년간 집권했던 기민당이 패배했다. 벤츠 본사가 있는 독일 최고의 산업도시 슈투트가르트가 주도인 이 지역은 보수정치의 아성이었다. 그런데 소수정당이었던 녹색당이 주 정부를 인수할 수 있을 정도로 기적적인 승리를 한 것이다.
독일 국민은 안전에 민감하다. 독일 사전에 안전불감증이란 단어는 없다. 먼 나라 일본의 원전 사고에 대해 이처럼 소동을 일으키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일본 대지진이 독일에서 정치적 지각변동을 일으키고 있다. 빠른 경제 회복으로 세계 금융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하고 유럽 금융위기 해결사 역할을 떠맡는 등 경제관리 능력을 인정받고 있는 독일의 보수정권이 환경 문제에서 도전을 받고 있다.
보수 집권당의 정책 급선회
독일에서는 17개 원전이 전기 생산의 25%를 차지하고 있다. 10년 전 사민당의 슈뢰더 정권은 2020년에 모든 원전 가동을 중단하는 원자력 제로 법안을 통과시켰다. 하지만 작년 가을에 기민당 정부는 원자력을 포기하는 것은 무책임하고 낭만적인 태도라고 비판하고, 원자력이 기후변화 문제를 해결하는 친환경 에너지라는 점을 부각시켜 원전 가동을 12년 연장하는 수정법안을 관철했다.
하지만 일본 원전 사고가 발생하자 독일 정부는 1980년 이전에 건설된 7개 노후 원전 가동을 즉각 중단시키고, 금년 6월까지 자연재해와 테러 공격에 대한 안전성 검사를 한 뒤 재가동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나머지 10개 원전에 대해서도 2020년 이전에 폐쇄하겠다고 공표했다. 보수 성향의 현 집권당이 과거 진보 정권보다 더 앞서 나가고 있다.
급선회하고 있는 독일의 원자력 정책은 경제적으로나 재정적으로 많은 비용을 초래한다. 원전 가동 중단으로 매일 100만 유로의 손실을 보게 된 독일 전력회사가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고 나섰다. 안전 점검을 이유로 갑작스레 3개월간 가동 중단을 명령한 데 대한 법적 근거가 미흡하다는 것이다.
원전 폐쇄는 경제적, 재정적 손실을 가져오지만 더 빨리 재생에너지 시대로 진입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우선 부족한 전기를 이웃 나라로부터 수입해야 한다. 무엇보다 독일 접경지역에 있는 프랑스의 노후 원전에서 전기를 수입하게 될 것이다. 국내적으로 원전 사고 위험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이웃 나라의 노후 원전에 더욱 의존하게 되는 결과를 가져오게 되는 것이다. 이것은 원전의 안전 문제가 일국적 차원에서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말해준다.
현재 동북아 지역은 원전의 전성시대다. 일본이 55개 원전을 가지고 있고, 한국에 21개 원전이 있다. 중국은 현재 13개 원전을 가동 중이며 27개 원전을 건설하고 있다. 또한 향후 50개 원전을 추가 건설할 계획을 갖고 있다. 현재 건설되는 원전은 대부분 해안 지역에 위치해 있다. 중국은 개혁개방을 실시하면서 해안 지역을 집중적으로 개발했고, 그 결과 이 지역이 국내총생산에서 차지하는 비율이 70%에 달하고 있다. 따라서 전기 수요가 집중돼 있는 해안 지역에서 원전 건설이 줄을 잇고 있다.
동북아도 원자력공동체 필요
지진이 빈번한 중국에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재현된다면 한반도는 직격탄을 맞을 것이다. 이 기회에 동북아 지역에서 핵의 평화적 이용과 안전을 점검할 원자력 공동체 필요성이 제기된다. 가능하다면 북한 핵 문제도 함께 논의할 수 있을 것이다. 일본에서 발생한 방사선에 대한 두려움이 먼 유럽이 아니라 가까운 동북아에서 원자력 협력을 촉진하는 유발요인이 돼야 할 것이다. 안전은 공포와 연결돼 있다. 안전에 대한 열망은 공포심에서 나온다.
고상두 연세대 교수 유럽지역학
[글로벌 포커스-고상두] 독일을 덮친 원전사고 공포
입력 2011-04-12 17: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