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망받는 수비수에서 불미스런 폭행 사건에 휘말려 20대 젊은 나이에 은퇴했다. 이후 농구에는 시선조차 두지 않고 골프와 사업에 몰두했지만 참담한 실패를 겪었다. 그래서 무명 대학의 감독으로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결국 지도력을 인정받아 여자농구에 진출해 프로스포츠 전대미문의 5시즌 연속 통합우승을 일궈냈다. 신한은행 임달식(47) 감독 이야기다. 임 감독은 지난 1일 KDB생명과의 챔피언결정전에서 우승이 확정되자 뜨거운 눈물을 흘렸다. 화려한 멤버로 매일 1등만 한다는 주변의 시샘과 여자농구를 망치고 있다는 따가운 시선에 대한 설움 때문이었다. 임 감독은 11일 서울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인터뷰를 갖고 “절대 화려한 멤버 때문에 우승한 것은 아니다”면서 “열심히 준비했기에 우승을 할 수 있었다”고 강조했다.
임 감독은 이번 시즌 유난히 힘들었다고 했다. 선수들의 부상 때문이었다. 신한은행은 시즌 초부터 정선민, 최윤아, 전주원 등이 돌아가면서 몸을 다쳤고, 플레이오프 이틀 전에는 또 다시 정선민이 큰 부상을 입었다. 센터 하은주도 체력적인 문제 때문에 15분 이상을 뛰기 힘들었다. 하지만 임 감독은 이를 대비해 시즌 전부터 준비를 철저히 했다고 한다. 주전 선수들이 다치면 김연주와 이연화, 윤미지가 들어가 제 몫을 해줬다.
임 감독은 시즌 전 김단비와 김연주, 이연화 등 선수 3명은 새벽에 따로 슈팅 훈련을 시켰다. 이들은 시즌 내내 팀에서 알토란 같은 역할을 했다. 바로 ‘임달식의 아이들’이다. 임 감독은 “나는 누구 한 명에 의존하는 팀을 원하지 않는다. 그래서 누구 한 명이 빠져나가도 메꿀 수 있는 시스템이 잘 돼 있다. 나는 미리미리 준비했다. 개막전에도 전주원, 최윤아가 못뛸 것을 대비해 이번에 신인상을 탄 윤미지를 대비시켰다”고 말했다.
임 감독은 기량이 탁월한 선수들 덕에 우승했다는 말을 무척 듣기 싫어했다. 그는 “지난해 신한은행 멤버가 아닌 선수들을 데리고 세계선수권대회와 광저우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딴 것으로 내 지도력이 증명된 것 아니냐”며 “광저우 대회 때는 다른 팀에서 선수를 안 내줘 훈련도 제대로 해보지 못했지만 간신히 팀을 추슬러 성적을 냈다”고 강조했다.
임 감독은 훈련을 할 때 승부욕을 굉장히 강조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연습 게임을 해서 지는 팀은 코트 다섯 바퀴를 돌도록 했다. 임 감독은 “선의의 경쟁을 하도록 한다. 그래서 우리 선수들은 경기에서 무엇을 하면 이길 수 있는 지를 잘 알고 있다”고 말했다.
임 감독은 대학 농구 감독에서 곧바로 여자농구 감독으로 왔다. 그래서 초창기 선수단을 휘어잡는 데 애를 먹었다고 했다. 하지만 “나는 한 번 뱉은 말은 반드시 실천한다”는 기본 원칙을 지켰다고 전했다. 그는 2007년 처음 신한은행에 왔을 때 일화를 소개했다. 당시 임 감독은 광주 전지훈련 때 정선민과 김연주를 훈련 도중 집으로 돌려보냈다. 분명히 전지훈련 갈 때 이틀 이상 쉬는 선수는 집으로 돌려보낸다고 말했기 때문이었다. 임 감독은 “아마 기싸움이었을 것”이라며 “그런데 본인들은 팀의 기둥이었으니 안 보낼줄 알았나보다. 그 때 선수들이 우리 감독은 한 번 이야기하면 한다는 것을 느꼈을 것”이라고 전했다.
사실 임 감독은 1991년 농구대잔치 때 당시 기아 소속이었던 허재 KCC 감독과의 폭행 사건으로 유명세를 치렀다. 하지만 그로인해 1년간 경기 출장 정지를 당했고, 이에 농구에 환멸을 느낀 임 감독은 1993년 28살의 나이에 농구를 그만뒀다. 이후 임 감독은 골프에 진출해 세미프로 자격까지 땄고, 서울 강남에 큰 한정식 집을 냈다. 하지만 외환위기로 부도가 나면서 엄청난 생활고에 시달렸다. 결국 2001년 조선대 감독으로 농구계에 컴백했고, 지도력을 인정받아 2007년부터 신한은행 사령탑을 맡아 5시즌 연속 통합 우승이라는 위업을 이뤄냈다. 임 감독은 “항상 기회는 있다. 그 기회를 잡기 위해선 준비가 돼 있어야 한다. 인생에는 굴곡이 있다. 내가 굴곡이 있을 때 잘 버티면 다시 좋은 상승세가 있다. 그것을 보고 준비하면 언젠가 기회가 오고 성공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임 감독은 사실 여자 농구에서 모든 것을 이뤘다. 그래서 이번 시즌을 마치고 남자 농구 지휘봉을 잡지 않겠느냐는 전망도 많았다. 20년전 폭행 사건의 당사자였던 허재 KCC 감독과의 매치를 기대하는 분위기도 있었다. 하지만 임 감독은 아직 남자 농구로 말을 갈아탈 생각은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는 “신한은행은 지금까지 좋은 시절이었지만 팀 리빌딩을 하고 새 도약기가 필요하다. 그 일을 이룬 후 내 신상에 변화를 주고싶다”고 말했다.
모규엽 기자 hirte@kmib.co.kr
임달식 신한은행 감독 “통합 5연패 비결 바로 철저한 준비 좋은 선수 덕분이란 말 인정 못해”
입력 2011-04-12 17: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