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문일] 방사능 奇談 2제

입력 2011-04-12 17:50
1960년대 초 미국 공군은 심리학자들에게 심리적 스트레스 상황에 처했을 때 수행능력이 떨어지는 현상을 연구해 줄 것을 의뢰했다. 연구팀은 실험 대상 병사들에게 비행기가 나타나면 무전으로 본부에 알리는 임무를 부여해 한 사람씩 외딴 지역들로 보냈다. 비행기를 살피고 있는 병사들에게 무선 연락이 왔다.

자신들 모르게 세 집단으로 나뉜 병사들은 ‘사고로 방사능 물질이 주변 지역에 떨어졌다’, ‘주변에 산불이 났다’, ‘잘못 발사된 포탄이 그 지역으로 날아가고 있다’라는 세 가지 경고 가운데 하나를 들었다. 작전은 취소됐고, 헬리콥터 구조팀에게 위치를 보고하라는 명령도 따랐다. 병사들이 위치를 알리려 하자 송신기가 작동하지 않았다. 본부에서는 마치 그 문제를 알고 있는 듯 ‘송신기를 고치고 위치를 다시 알려라’는 명령이 떨어졌다.

잘못 발사된 포탄 경고를 들은 병사들은 곧 포탄 한 발이 근처에서 터지자 땅바닥에 엎드렸고, 몇 발이 더 터지자 명령을 무시하고 도망쳤다. 산불 경고를 들은 병사들은 300m쯤 떨어진 곳에서 솟아오른 연기를 확인하고는 대부분 침착하게 송신기를 만졌고, 두 사람은 도망쳤다. 연기는 연막탄이었다.

가장 침착한 반응을 유발한 것은 방사능 경고였다. 병사들은 두려워할 게 없는 것처럼 송신기를 만졌다. 연구팀은 병사들이 이미 방사능에 오염됐다고 생각해 도주를 포기했거나, 방사능 위협이 뭔지 모르는 것 같았다고 추측했다. 연구팀은 일반적으로 현장경험이 많고 교육을 많이 받은 군인일수록 스트레스 상황에서 더 침착하게 행동했다고 지적했다.(알렉스 보즈 저·김명주 역, ‘위험한 호기심’)

일본 민방 사회부의 간부가 후쿠시마 원전 폭발이 일어나자 방사능을 피해 간사이 지역으로 도망갔다. 이 간부는 원전 전문가로부터 원전사고에 대한 정보를 듣고 ‘젊은 기자와 어린 아이를 둔 기자는 현지 취재를 시키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받아들여지지 않자 출근을 거부했다.

후쿠시마 이전까지 일본 최악의 원전사고였던 1999년 도카이무라 임계사고를 취재하다 피폭을 경험한 그는 자신의 블로그에서 “임부, 유아, 초등학생, 가임연령대 여성만이라도 후쿠시마 원전 100㎞ 밖으로 대피시켜야 한다”고 호소했다. 어쨌건 지난주 대기발령으로 사실상 ‘나가라’는 통보를 받아 1500만엔(약 1억9500만원) 이상의 연봉을 포기해야 할 처지라고.

무식해서 용감한 경우가 있고, 유식해서 용감한 경우가 있다.

문일 논설위원 norwa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