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도한 조명 공해… 밤이 사라졌다 생태계가 병들어간다

입력 2011-04-12 10:06

“사람도, 동·식물도 과도한 빛 때문에 못 살겠어요.”

과도한 조명 탓에 사람은 생체리듬이 변하면서 각종 질병에 시달리고, 동·식물은 번식률이 낮아진다. 최근 고유가가 지속되면서 야간조명을 줄이기 위한 캠페인이 펼쳐지고 있다. 그러나 고유가 시대가 아니더라도 사람과 생태계의 건강을 위해 과도한 야간조명을 상시적으로 규제해야 할 시점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온실가스 저감과 에너지 절약은 물론 은은하고 세련된 도시경관을 만들어갈 수도 있다.

해안 모래사장에 산란하는 바다거북의 유생이 일제히 알에서 깨어나 해안까지 달려가는 장관을 자연 다큐멘터리에서 본 적이 있을 것이다. 이 바다거북 유생은 바다가 펼쳐진 방향이 나무 등으로 가려진 육지 방향보다 상대적으로 밝기 때문에 바다로 향하게 된다. 해안까지의 레이스 도중 많은 바다거북 유생은 갈매기, 너구리 등 포식자의 밥이 된다.

그러나 최근 해안개발로 인해 육지 쪽의 가로등과 건물의 야간조명이 밝아지면서 바다거북 유생은 바다가 아닌 육지 쪽으로 향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방향을 잃은 바다거북 유생은 포식자에게 먹히거나, 도로에 막혀 헤매다가 해가 뜨면 말라 죽는다. 이들은 포식자 때문에 생존률이 낮은데 야간조명으로 인해 아예 대를 이어가기가 어렵게 된 것이다.

과학자들은 미국 플로리다주 동부해안 지역에서 산란지의 덮개 사용이나 둥지의 집단 이주와 같은 여러 대책을 시험해 봤지만 별 효과가 없었다. 그러다가 해안에 가로등을 사용하는 대신 차선을 따라 조명등을 도로바닥에 심는 방법을 시도했다. 그러자 바다거북 유생은 방향을 잃지 않고 바다로 향했고, 그들의 해안 엑소더스 성공률은 다시 높아졌다.

◇생태계 피해=한국환경정책·평가연구원 이상범 연구위원은 최근 펴낸 보고서 ‘야간조명으로 인한 생태계 영향 평가방안에 관한 연구’에서 해외의 생태계 피해사례와 저감대책을 소개했다. 이 위원은 “그간 빛 공해 연구는 도시지역에 집중됐다”면서 “긴 진화의 시기를 거쳐 야간의 척박한 조명환경에 적응한 생태계가 갑작스러운 조명 과다로부터 받는 영향이 가장 심각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곤충의 경우 원래 서식지를 떠나 빛 주변을 맴돌다가 땅바닥에 떨어지거나 그 주변에서 죽음을 맞는다. 진공청소기 효과라 부르는 이 현상이 일어나면 곤충 개체군 감소와 생태계의 종 다양성 감소까지 초래한다. 양서·파충류도 빛에 약하다. 빛을 향해 몰려드는 곤충이 바닥에 떨어지는 것을 먹기 위해 두꺼비나 개구리가 가로등 아래에 모여들게 된다. 그러나 야간조명의 증가는 파충류가 포식될 위험과 사냥에 실패할 확률, 로드킬 사례도 증가시킨다. 지속적으로 야간조명에 노출된 두꺼비는 정자생성이 반으로 줄어 개체군의 감소로 이어지게 된다는 연구결과도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의 송재영 연구원은 “양서·파충류의 70∼80%가 야행성”이라며 “깊은 산중에 갑자기 야간조명이 설치되면 포식자-먹이관계의 교란, 생리현상의 변화, 로드킬 등 2차 피해가 초래될 것으로 추정되지만 실태조사는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조류도 야간조명에 의해 크게 영향을 받는다. 철새는 야간에 이동하면서 등대, 어선, 송전탑, 건물 등에서 나오는 빛을 따라가다가 충돌하거나 방향을 잃고 빛 주변을 맴돌다가 죽는 경우가 있다. 북미에서는 야간조명으로 인한 조류의 충돌사가 매년 수백만 마리에 이를 정도다. 우리나라에서도 대한해협은 조업 중인 오징어잡이 선단에서 나오는 불빛으로 환하다. 캐나다 토론토에서는 철새가 이동하는 봄과 가을의 몇 주에 한해 주민 참여를 통해 야간조명 소등과 꼭 필요한 경우에만 자동점등을 유도하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2000년부터 오징어잡이 어선에 조명갓을 사용토록 했고, 어선당 조명은 3만W를 넘지 못하도록 제한했다.

포유류의 경우 도시 개발이나 도로 개설에 따른 서식지 단절로 인한 생태계 문제는 야간조명으로 파장이 증폭된다. 그렇지 않아도 사라지거나 좁아진 생태 연결통로를 이용하는 소형 포유류가 포식당할 위험을 증가시킨다. 야행성 포유류는 로드킬의 위험이 높아진다.

◇사람의 건강영향, 농작물 피해=동·식물에게 일어난 일은 사람에게도 일어난다. 내분비선에서 만들어지는 면역물질인 멜라토닌은 밤중에 주로 생성, 분비되며 광주기성에 따라 조절되는데 지나친 야간 조명은 멜라토닌의 생성을 억제한다. 스튜어디스 등 야근을 많이 하는 직종에서 유방암 발병이 잦다는 보고는 대표적 증상이다. 창문을 통해 들어온 빛 때문에 수면장애를 초래하고 성장기 청소년은 성장장애를 겪을 수 있는 것으로 보고됐다.

지난해 환경부가 서울과 부산 등 6개 도시에 사는 3000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빛 공해 시민의식조사’ 결과에 따르면 22.6%인 678명이 야간 인공조명으로 불편을 겪거나 피해를 본적이 있다고 응답했다. 너무 밝아 눈이 부시고 도시 미관을 해친다는 의견도 44.6%에 달했다.

과도한 조명이 식물의 생장을 저해한다는 연구결과는 국내에도 있다. 도로변 가로등이나 주변 건축물 불빛에 노출된 논에서는 쭉정이가 많이 나온다. 농산물이나 과일의 수확량이 줄었다며 환경분쟁조정을 신청하는 사례도 늘고 있는 추세다. 중앙환경분쟁조정위원회에 지난 14년간 접수된 빛 공해 분쟁 248건 가운데 168건이 농작물 피해에 관한 것이었다. 수면장애가 75건으로 그 뒤를 이었다.

골프장 조경을 담당하는 엔지니어링회사에 따르면 심야나 새벽에도 개장하는 골프장에서는 잔디가 쉽게 말라죽는다고 한다. 메탈할라이드 램프를 생태계 피해가 훨씬 더 적은 나트륨램프로 교체하기만 해도 훨씬 낫겠지만, 현장에서 이행되지 않는 실정이다. 이상범 위원은 “골프장이나 관광단지내 숙박시설을 조성할 때 주변 숲이나 산지가 빛 공해로 크게 영향을 받는다”면서 “영국처럼 환경영향평가제도 안에 빛 공해를 독립된 항목으로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임항 환경전문기자 hnglim@kmib.co.kr